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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노사나불의 장엄, 통도사 영산전 팔상탱 (녹원전법상)의 부분. 1775년

석가모니 붓다께서 최초로 밝혀놓으신 방법 불교를 타 종교와 구별되는 '불교'이게 하는 이것! 사념처를 파헤쳐보기로 하자. 사실, 한 번도 '나는 무엇인가?' 또는 '왜 이렇게 존재하는가?'에 대해 진정한 의문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에게, 사념처란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이다. 아시다시피, 불교는 '없는 개념' 또는 '없는 세계'를 결코 만들어서 말하지 않는다. 실재하는 것만 말하고, 또 반드시 본 것만을 말한다. 그래서 '오온의 작용'에 하릴없이 하루 종일 또 일평생을 그리고 죽어서도 또다시 나서도 계속 윤회하면서도 쉴 새 없이 놀아나며 갇혀 있는 우리에게 그 메커니즘을 '보고 거기서 나오라'라고 종용한다.

 

'삶의 중심 잡기' _ 호흡 관찰

'사념처'의 뜻은 '네 가지 알아차림의 확립'이다. 네 가지란 ①신身 ②수受 ③심心 ④법法을 말한다. ①'신'은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움직임과 그것의 다양한 면모를 말하는데 자재自在하는 생리적 현상 및 그에 따른 감각을 말한다. 우리는 외부 세상과 그것에 반응하느라 정신없이 스스로의 몸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붓다께서는 먼저 '아나빠사 사띠'를 수행 일번지로 권하신다. 자신의 호흡(날숨과 들숨)을 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은 '개념과 이미지'로 호흡을 상상해서 보면 결코 발전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실제 현상을 직시해야 한다. 내 몸에서 가장 알기 쉬운 현재 진행형의 현상인 호흡, 즉 공기의 들어옴과 나감은 '부름과 꺼짐 또는 팽창과 수축으로 나타난다. 좀 더 설명하자면 신념처는 사대인 지수화풍地水火風이 이합집산과 운영을 보는 것인데 '단단함과 부드러움·가벼움과 무거움 ·흐름과 응집 ·따뜻함과 차가움 ·팽창과 수축 ·운동과 지탱 ·긴장과 진동 등'의 변화무쌍함을 보는 것이다.

 

이러한 호흡 관찰을 중심에 두고 있자면 [①신념처], 몸의 통증(어깨 또는 가슴 등)이 느껴질 것이다. [ ②수념처], 통증의 느낌을 관찰한다. 느낌(수)은 '좋다 · 싫다 · 중간이다'로 나타난다. 통증을 관하고 다시 중심 관찰(부름과 꺼짐)로 돌아오는 것을 반반 정도로 밸런스를 유지하며 진행한다.

 

이처럼 신념처에 중심을 두는 것은 위빠사나도 되지만 동시에 사마타도 된다. 고요함에 머무는 정定의 힘으로 통증의 느낌 [②수념처]과 거기서 유발되는 마음[③심념처]을 관하는 것이다. '수受'와 '심心'의 객관화 중심에는 신념처 '아나빠나 사띠'가 있다. ④법法이란, 오온 및 삼법인(무상· 고 · 무아)의 메커니즘을 보는 것이다.

 

'무명'의 생존기_'마음과 나'의 동일시

여기서 가장 힘든 것이 심心 즉 마음의 객관화이다. 화내는 마음, 슬픈 마음, 절망의 마음, 즐거운 마음 등 마음은 곧 '나'이기에 이것을 분리해서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분리가 안 되니 마음이 아플 때 실제로 몸이 아프다. 다양한 마음들이 우리를 휘감싸지만 그 이면에는 고통의 마음 '갈애', '들어붙는 마음' 집착을 명중하면 끝이다. 마음은 사라진다.

 

우리는 오랜 습관으로 고통이라는 마음을 즐기고 있다. "고통을 즐긴다고?" 붓다께서 득도 이후, 설법을 대중에게 할까 말까로 장기간 고민을 하신 적이 있다. 그때 독백하신 내용은 이렇다. "고통의 자아(에고 ego)에서 벗어나는 길을 설해주는 것을 대중은 원치 않는다. 대중은 그 고통을 스스로 즐기고 있기 때문이다."  '무명'은 이렇게 '마음과 나(아상)'를 통일시 하며 살아남는다.

 

'나'를 해체한 자리_ 연꽃 피다

꽃만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꽃을 피운다. 깨달음의 꽃! 하지만 꽃봉오리는 세세생생 닫혀 있고 쉽게 열리지 않는다. 또 열렸다 해도 수행력의 정도에 따라 잠시 머물다가 다시 닫힌다. 깨달음의 봉오리는 타원형의 모양으로 '연꽃 봉오리' 또는 '솔방울' 모양과 흡사하다. 불교에서는 연꽃 봉오리로 표현하지만, 서양에서는 솔방울에 견주어 서양학자들은 이것을 송과체(솔방울샘 또는 송과샘, 송과선)라고 부른다.

그림 1의 부분, 연화대좌, 모든 부처 및 보살은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보통 '앉아 있다'라고 표현하는데, 사실은 '연꽃에서 화생한 모습', 즉 '연화화생'의 모습인 것이다.

사람 뇌의 정중앙에 위치한 이 연꽃 봉우리 또는 송과체는 "불가사의한 분비샘", 신神과의 연결점" 또는 "영혼이 위치하고 있는 자리 (데카르트의 저서 <Treatise of Man(1637>에서)"라고 간주되었다. 이것이 열리면 '천 잎의 연꽃잎'이 만개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불교의 꽃이 연꽃(영서화 또는 공기화)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내가 없어진 아공我空의 자리에서 피기에 '공기화'라고도 한다. 그래서 불교미술은 온통 연꽃이다. 부처와 보살의 광배 ·대좌 ·보관 ·법의 ·지물 등등! "연화장세계는 향수로 된 바다 가운데 커다란 연못이 피어 있든/ 본래 법신불이 천 잎의 연화대에 앉았는데/ 천 잎이 각각 한 세계가 되고/ 그곳에 화현 한 일천 석가모니불이 계시며/ 다시 백억 나라에 모두 부처님이 계신 곳이라 한다.(범망경 중에서)

 

 

 

 

 

 

월간통도. 2022. 10. 중에서(p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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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마음은 다스릴 수 있는가? 혐오의 마음을 안 생기게 할 수 있는가? 이런 마음은 어떻게 생기는가. 마음이 생기는 원리. 그 과정을 본다면, 생겨나려는 마음에 태클을 걸 수 있다. 혐오의 마음과 갈애의 마음은 삶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것은 멈추지 않고 부단한 생멸의 연속 파노라마로 파도친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하릴없이 놀아난다. 이러한 번뇌의 마음에 휘둘리는 것이 진정 지겹다면, 붓다께서 말씀하신 마음 공략법 또는 번뇌 소멸법을 간략히 소개하니 주의 깊게 읽어보시기 바란다.

그림 1 : <화장찰해도> 조선후기, 마본채색, 경북예천용문사 소장

마음 일어나나는 과정들

마음이란 것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그 근원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마음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6근과 6경이 우선 만나야 한다. 이것을 12처라고 한다. 12처는 우리의 모든 생명체의 인지과정으로 불교에서 '일체법'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즉 우리가 체험하는 세상 '일체 모든 것'은 결국 12처라는 것이다.

 

"일체(너와 나, 지구의 생명체, 우주)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붓다는 '일체는 12처이다."라고 말하시며, "만약 내가 말하는 일체가 일체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다른 일체를 말한다면 그것은 그저 개념일 뿐이다.(<잡아함경> 13권, 제319경)"라고 하신다. 붓다께서 말씀하신 내가 일상으로 체험하는 내가 삶으로 살고 있는 나의 전부인 실질적인 일체! '12처'란 무엇인가.

 

12처란 6근과 6경을 말한다. 6근(6개의 기관)이란, 눈 · 귀  ·코  ·혀  ·몸  ·인식의 기관을 말한다. 6근에 상응하는 외부 경계가 있는데 이는 6경으로 색(형상) ·성(소리)   ·향(냄새)  · 미(맛)  · 촉(감촉)  ·법(마음작용)이다. 6근을 '세상이 내게 들어오는 문'이라 해서 6문 또는 6 입이라고도 한다.

 

6근과 6경은 각각 따로 존재할 때는 서로 기능을 못하지만 이것이 만나면서 6식(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이 생겨난다. 양자가 만나는 것을 '촉'이라 하고 촉을 통해 '식'이 일어난다. 이는 손뼉 소리에 비유된다. "비유하자면 두 손이 서로 마주쳐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아함경》<수성유경>)" 한 손은 '눈(안근)'이고 다른 손은 '풍경(색)'이다. 두 손이 서로 만나면서(촉) 손뼉 소리인 불꽃(식)이 일어난다.

 

 

엄식의 파도에 부딪쳐 일어나는 것들

6근과 6경의 만나면서 6식이 일어나고, 이는 순식간에 수受 [느낌: 좋다 · 싫다  ·중간이다]를 불러일으킨다. '좋다'는 더 취하려는 마음으로 반응하고, '싫다'는 혐오와 분노로 반응한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느낌은 내 업장 또는 무의식 속 정보의 저장고 속에서, 과거 유사한 느낌을 받았을 때와 함께 저장된 대상을 내 의식표현 위로 던져 올린다.

 

이를 상想(특징 무엇으로 지각함)이라 한다. '6근과 6경의 만남(촉) →6식 →수 →상'은 섬광처럼 자각 못하기에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상'의 다음 단계는 '심尋"인데 여기가 중요하다. 심은 '일으킨 생각'으로 쉽게 말하면 마음이 쏠리는 방향으로 이다. '심'의 단계에서 스스로의 업 또는 업식대로 주의력이 쏠려 의심 · 추측 · 판단 등이 일어나고 최종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하나의 대상 또는 현상을 두고도 사람마다 '반응'이 천차만별인 이유는 '심' 단계에서 일어나는 업행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격 차이'라는 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업식(무의식) 속의 다년간 경험과 체험을 통해 이미 내재된 것에 반응 체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상대의 반응 체계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너의 반응체계는 왜 나의 반응체계와 다르냐고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오염된 반응체계를 단계별로 알아차려 이것의 자동 작동을 맘추는 것, 오염된 마음 작동에 태클을 거는 것이 바로 심수관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드디어 '마음의 정화'에 첫걸음을 내딛는다. 불가향력의 업식 무의식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마음이 정화된 자리 드러나는 '여의주' 세상

그림 2 : "여의주가 한량없이 온 누리에 두루하도다." 그림 1의 부분

이를 업장소멸이라고 하는데 업장이 소멸된 자리에서 이제 일체 세상은 어떤 모습을 드러낼까? 여의주 구슬 천지이다. "신령한 이 구슬, 지극히 영롱하여/ 본체는 항하사(갠지스강의 모래알)를 둘러싸 안팎으로 비어 있다. 사람마다 부대 속에 당당히 간직해, 가고 오고 모이고 흩어지는 희롱이 끝이 없다/ '마니' 혹은 '영주'라고 하니, 이름과 모양은 많은 듯, 하나 본체는 하나다/ 세계마다 티끌마다 분명하니 마치 보름달이 가을 강에 한가득인 듯(중략) 아하하하! 이 어떤 물건인고!/ 일 이 삼 사 오 육 칠/ 세어보고 뒤쳐보아도 끝이 없으니/마하반야바라밀이라네." (나옹화상의 《완주가》또는 <영주가>)

 

이러한 경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명작으로 <화장찰해도> (조선후기, 경북 예천 용문사 소장)가 있다. 안팎으로 무수한 '구슬 또는 여의주'를 《화엄경》에서는 '세계종世界種'이라고 표현한다. "한 세계종이 일체에 들어가며/ 일체가 하나에 들어가되 남음이 없으니/ 체상體相은 본래대로 차별이 없음이라/ 짝도 없고 한량없어 온 누리에 두루하도다." (<화엄경> 화장세계품)

 

 

 

월간통도 2022.11 중에서 (p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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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과거 숙세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악독한 아들을 두게 두었나요?

  더 이상 이 혼탁하고 사나운 이 세상에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아예 죽고 싶다." 모든 인연 끊겠다." 이 세상에 대한 염오를 토로하는 위제희부인. 《관무량수경》도입부에 나오는 <경을 설하게 된 인연>의 내용이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아사세 태자)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각각 깊은 골방에 가두고 굶겨 죽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픔과 절망 속의 부인은 부처님께 "아· · · 진정으로 원하옵건대 청정한 업[淸淨業]으로 이루어진 안락한 세상, 극락極樂을 보여주십시오!"라고 울부짖는다. 그러자 부처님은 "부인이여, 극락세계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마음을 한 곳에 모으십시오!"라고 하신다. '마음을 한 곳에 모으라.'는 선정[禪定, 사마타] 수행에 대한 코칭이 시작된다.

그림 1 <제6총관 변상도>, 《어제불설관무량수불경》, 1425년, 판화, 동국대학교도서관 소장, "第六總觀,樓中天樂 寶樹地池 讚佛法僧 一念員成"이라는 게송이 우측에 있다./ 제6총관 누각 속에는 천상의 선율이 흐르고, 보배로운 나무 ,땅, 연못이 있다. 모두 삼보(불법승)를 칭송, 일념으로 원성(깨달음)을 이룬다

"내가 뭔 죄를 지었길래!"

업장이 닥쳤을 때 우리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 "내가 뭔 잘못을 했길래!" · "내가 어찌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어." 등, 상기 위데휘 부인과 같이 반응을 한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고 마냥 억울할 뿐. 이러한 태도는 우리 중생들이 취하는 공통적이고도 일반적인 반응이다. 내게 닥친 업장이 난데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인과(因果, 원인과 결과)'를 보는 통찰지가 없기 때문이다. 업장의 원인은 현생뿐만 아니라 세세생생 전생까지 소급된다. 우리의 표면적인 삶과 죽음에 상관없이 '업業'이란 것은 자신만의 운영 철칙대로, 속절없이 진행된다. 처절한 고통 속의 부인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서방극락 연꽃에 왕생하고자

돌아가는 길 속세 인연 끊겠다고 말하지 말라

단지 지는 해가 매달린 북과 같다 여기고

오롯이 눈앞에 분명히 보도록 하라('제1일몰관 : 지는 해를 관하라)"

<출처 : 「관경16관변상도」(고려시대 1323년 일본 지은원 소장)의 하단 화기 도입부>

 

거두절미하고 일원상('지는 둥근 해[일몰]'에 비유)에 오롯이 집중하라 하신다.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정定]을 체득하라는 것이다. 관무량수경의 '극락을 체험하는 16관법' 내용에는 "눈을 뜨거나 감거나 마음을 한결같이 대상에 집중하여 놓지 말과 관하라."라는 문구가 계속적으로 반복된다. 이렇게 하나의 대상(화두 ·아미타 염불 · 초기불교 40가지 선정 주제 · 관무량수경 16관법에 제시된 대상 등 어느 것이든 좋다)에 집중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오롯한 집중, 계속되면 · · · 나타나는 현상

하나의 대상에 끈질기게 집중하면, '하얀빛'이 나타나고 그것이 '유리'처럼 투명해진다. 아미타 3부경(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에 공통으로 언급되는 '유리의 땅'이 나타난다. 사마타 수행의 특징은 세상이 선명해지고, 투명하고 영롱하게 빛이 난다는 것이다. 집중도가 강할수록 이 오묘한 빛의 강도와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또 세진다. 실로, 온통 무량광이다. 무량광, 즉 '무량한 빛'이란 산스크리스트 아미타바의 의역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비타불이라고 칭하는 경지는 '무량한 빛과 무량한 생명(무량수)'이 무상하게 파도치는 세상이다.

 

처음에는 내가 '빛'을 대상으로 보다가, 나중에는 그 빛이 거꾸로 '나'를 대상으로 하여, 나를 순식간에 발아들이고 만다. 순간, 주객이 하나가 되는 일경성을 맛본다. 극락의 해 · 물 · 땅 · 나무 등을 관해 나가다가 제6관 총관에는 급기야 극락의 누각에 떡하니 들어앉게 된다. 조선 전기 왕실판본 《어제불설관무량수불경》의 해당 변상도(그림 1,2)를 보면, 총관을 설명하근 게송에 '일념원성'이란 표현을 발견할 숭 있다.

 

전도몽상, 이제 '거지'가 아니라 '왕'으로

'일념으로 원성을 이루었다.'라는 말은 선정(사마타) 수행을 통해 물아일체 또는 범아일여(온 만물과 하나 된 경지)가 되었다는 말이다. '나와 대상'으로, '주체와 객체'가 나뉘어 세상이 인식되다가, '주객이 하나' 된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의식이 내 몸뚱이에 갇혀 있다가, 거기에서 벗어나 바탕의식 또는 우주의식과 하나 된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되면 유식사상에서 말하는 '평등성지'의 관점이 확보된다.

 

개가 평생토록 킁킁 바닥 냄새만 집착해 맡다가, 어느 날 천공의 보름달을 본다 → 계속 본다(사마타 수행) → 보름달과 하나가 된다 → 이제 보름달 그 자체가 되어 세상을 비춘다 → 빛 속에 보든 것이 하나이다[일경성].

 

그림 2 극락의 누각에서 두루 관하다. 그림 1 <제6총관 변상도>의 부분

'개의 시점'에서 '보름달의 시점'으로의 대대적 전환이 온다. 보름달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본다. 보름달이 비추는 풍경 속에 내(개)가 있다. 이제는 나를 객관적 풍경 속에서 본다. 그러니 고통이 사라진다. 여태껏 전도몽상(앞뒤가 뒤집어진 꿈같은 허상)되어 살았구나! 항상 '이것 달라, 저것 달라, ' 허덕이는 거지의 입장에서, 이제는 무엇이든 주는 왕의 자리로 바꿔 앉았다. 사마타 수행의 첫 결실인 일경성(또는 초선정)은, 찬란한 극락의 누각에 주인공으로 들어앉은 모습(총관의 부분, 그림 2)으로 표현된다.

 

 

 

월간통도 2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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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의 산문을 들어서면 큰절을 지나 여러 암자로 향하는 갈래길을 만날 수 있다. 암자는 통도사의 물길과 들길 사이사이에서 영축산의 역사와 오롯이 함께하고 있다. 통도사의 산내 암자는 모두 17곳이다. 암자는 큰절의 부속 사찰로서, 스님들의 수행을 위해 지어진다.

 

영축산을 끼고 있는 통도사의 산내 암자 중에는 892년 고려시대에 창건된 백운암이 가장 오래되었으며, 이후로 안양암을 비롯해 많은 암자들이 건립되어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현재 통도사에는 안양암, 자장암, 비로암, 백운암, 축서암, 보타암, 취운암, 수도암, 서운암, 사명암, 백련암, 옥련암, 극락암, 서축암, 금수암, 반야암, 관음암의 산내 암자가 있어 수행과 기도를 위한 정진처로 이어져 오고 있다.

 

통도팔경通度八景

팔경 八景은 향토 문화의 산물이고 향토 경승지에서 멋과 경관이 특별하여 향토의 이미지를 대표할 수 있는 경치이다. 통도팔경은 영축산의 조화로운 자연풍광과 더불어 산지승원의 아름다움을 벗 삼을 수 있는 여덟 곳을 말한다. 일찍이 구하 스님은 통도팔경을 두고 시를 지어 그 아름다움을 표현했다.

 

제1경 무풍한송

무풍한송은 무풍송림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한자로는 춤출 무舞 자에 바람 풍風 자를 쓴다. 마치 소나무가 바람에 춤추는 듯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유연한 곡선을 보이는 통도사의 송림을 표현한 것이라 하겠다. 이곳은 통도천의 계곡이 시작되는 무풍교 · 삼성반월교 · 일승교에 이르는 하천변의 풍광을 이른다.

무풍한송로

완만한 경사를 따라 흐르는 계곡과 굽이치는 소나무의 허리선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현재는 무풍한송로를 산책로로 정비하여, 참배객들이 길을 따라 걸으며 통도사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길은 통도팔경 중 제1 경이자,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제2경 안양동대

안양동대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통도사의 전경이 펼쳐지고, 무풍한송로와 통도사 산문 앞 시가지가 보인다. 또 서족으로는 자장동천을 볼 수 있어 통도사 암자 중에서 가장 전망이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영축산에는 많은 냇물이 합류하여 하천을 이루는데, 안양암 부근에 이르러 두 개의 큰 하천이 된다. 그중 하나는 동쪽, 하나는 남쪽을 흘려 두 하천이 합류하여 통도천을 이룬다.

 

제3경 비로폭포

비로폭포는 비로암의 서족에 있다. 영축산에 발원하여 비로암 서쪽으로 흐르는 이 하천에는 크고 작은 폭포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비로폭포는 2~3단 정도로 가장 큰 폭포인데, 과거에는 규모가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폭포에 비하면 규모가 크지 않지만, 유량이 풍부할 때는 폭포수 소리가 영축산을 크게 울렸을 것이다.

비로암 비로폭포

 

제4경 자장동천

자장동천은 자장암 옆을 흐르는 하천이다. 안양동대의 서쪽에서 발달한 계곡인데, 크고 넓은 암반이 많아 물이 맑고 시원하게 흐르는 모습이다. 이곳은 세이석이라 하여 자장 스님이 귀를 씻은 곳으로 알려진 바위가 있다. 자장암은 자장율사가 암벽 아래에 움막을 짓고 수행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자장동천의 시원한 물소리와 암자의 조화가 아름다운 곳이다.

 

제5경 극락영지

극락영지는 극락암의 연못을 이른다. 이 작은 연못에 영축산의 산봉이 그대로 비친다고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극락영지는 홍교도 유명하다. 수면에는 수련이 자라고 홍교인 극락교가 연못 위를 가로지르고 있어 연못 자체만으로도 운치가 있다. 극락영지 위의 극락교은 차안에서 피안으로 건넌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이 다리를 건너면 극락으로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제6경 백운명고

백운명고는 백운암에서 들리는 법고 소리를 말한다. 법고는 불전 사물의 하나로, 축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로 친다. 백운암은 통도사 암자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구름에 신비롭게 감춰져 있지만 그 운무를 뚫고 힘있게 들리는 법고 소리를 표현한 경지다.

 

제7경 단성낙조

단성낙조는 단성에서 바라보는 낙조의 아름다운 경관을 말한다. 단성은 영축산의 산릉을 중심으로 축조된 산성인데 임진왜란 때 관군들이 주둔하며 가천 들에까지 나가 전쟁을 치렀다고 한다. 이곳 산성은 양산, 울산, 밀양을 방어하는 진지로 쓰였다. 단성의 흔적은 희미하지만 맑은 날에는 이곳에서 서족 하늘과 산, 들을 붉게 물들인 낙조를 볼 수 있다.

 

제8경 취운모종

취운모종은 취운암에서 울려 퍼지는 범종 소리를 말한다. 범종은 불교의 사물 중 하나로 만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취운암의 범종 소리가 계곡을 만나 영축산을 휘감으면서 경내의 모습과 아름답게 조화를 이룸을 표현하였다.

 

물(水)이 좋은 암자

반야암은 1999년에 세워진 암자다. 이곳을 지을 때 80자 깊이의 지하수를 파서 음용수로 사용했는데 그 물이 '반야수'이다. 반야암의 돌수조에서 물맛을 볼 수 있다. 이 물은 PH7.64로 중성에 가깝고 유기물 오염이 거의 없는 청정수이다.

 

서축암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무량수전이 보이고 오른편 석탑과 돌로 만든 대형 수조가 놓여 있다. 서축암 약수는 영축산에서 퍼올린 지하수로, 청정한 수질은 중성에서 알칼리성 사이이고, 물맛이 좋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영축산에는 두 갈래의 샘물이 있다. 백운암을 사이에 두고 양쪽에 위치하는 '금샘'과 '은샘'이다. 금수암의 금수는 백운암의 금샘에서 내려오는 물이기에 지어진 이름이다. 금수암은 스님들의 정진처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의 출입이 어렵지만, 샘물은 영축산의 정기를 그대로 품은 토층수로 영축산 물의 정수이다.

 

수도암에는 통도사 스님들이 일부러 가서 걸어오는 샘물약수가 있다. 수도암 샘물은 법당 앞마당에 철제로 수조를 만들고 수도꼭지를 설치해서 누구나 마실 수 있게 해 두었고, 법당 왼쪽 요사체 안에도 철제 뚜껑으로 덮인 사각형 수조가 있다. 요사채 안의 샘물이 원 약수여서 큰절 스님들이 옛날부터 자주 길어 마셨다고 한다. 수도암 샘물약수는 영축산 능선에서 자연적으로 솟아나는 샘물이다. 이 물은 중성에서 산성 상태에 가까운데 영축산 줄기의 수정 광산을 통과하기 때문인지 상대적으로 이산화규소 성분이 많아서 아주 물맛이 좋고 찻물로도 좋다.

 

옥련암 장군수는 아주 유명한 물이다. 조선 초기의 유명한 장군인 이징옥, 이징석, 이징규가 옥련암 약수를 먹고 장군이 되었다고 해서 '장군수'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그 영험한 기운 덕분인지, 아프거나 몸이 약한 사람이 이 물을 마시면 장군처럼 기운이 좋아진다 하여 마을 사람들이 물을 많이 길어 간다. 이 물은 중성에서 산성 상태에 가까운데 특히 용존 산소가 높다. 현재 장군수는 암자 뒤쪽의 산중에서 나오는 물을 두 군데의 탱크에 보관하여 관으로 이어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수조 한 곳과 수도꼭지를 세 곳에 설치하여 두고 있다. 물이 워낙 청정하고 깨끗하여 물탱크가 이물질 없이 늘 깨끗한 상태라고 전한다.

 

자장암의 금개구리, 금와보살의 전설

자장암은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가  바위벽에 움집을 짓고 수도하던 곳이다. 본당 뒤에는 자장율사가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어 금개구리를 살게 했다는 유명한 금와공이 있다. 《조선불교통사》 하권 <승유어급변화금와>에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축서산 통도사의 자장암 곁 석벽에 무지(엄지손가락) 하나가 들어갈 만한 구멍이 있으니 그 속에 한 쌍의 와자(작은 개구리)가 있다. 몸은 청색이고 입은 금색인데 어떤 때는 벌과 나비가 되기도 하여 그 변화하는 것을 헤아릴 수 없다. 여름철에 바위가 과열되면 뜨겁기가 솥과 같으나 그 위를 자유로이 뛰어다닌다. 사승이 이를 일러 말하되 금와라 하더라. 그런데 이 금개구리는 도무지 산문 밖으로 나가지 아니한다고 하므로 한때 어떤 관리가 그 말을 믿지 아니하고 그 개구리를 잡아 합중에 넣어 엄폐하고서 손으로 움켜쥐고 돌아가다가 도중에 열어 보니 없어졌다. 세전에 그 개구리는 자장율사의 신통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이 금개구리를 친견하기 위하여 수많은 신도들이 자장암을 찾고 있는데 보는 사람도 있고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워낙 신통하다 보니 금와보살이라 부르는데, 아무나 볼 수 없으니 만나기만 해도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서운암 염색축제, 꽃과 예술의 공간

통도사 산내 암자 중 하나인 서운암은 전통예술을 통한 문화 포교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전통 약된장, 천연염색, 도자삼천불과 장경각 등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중봉 성파 큰스님을 중심으로 활발한 예술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매년 봄이면 이곳에는 상춘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금낭화, 황매화, 홍매화, 흰 매화부터 수련, 능소화에 이르기까지 5만여 평의 야산에 심은 100여 종의 야생화 수만 송이가 만개하기 때문이다. 이곳 야생화 군락은 불교에서 말하는 화장장엄세계를 그대로 구현해 놓은 듯 저마다의 색과 향으로 관광객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아름다운 색의 향연을 '천'에 옮겨 담는 천연염색은 서운암의 독보적인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 기존의 야생화축제와 더불어 매월 봄이 되면 서운암 염색 축제로 시민들에게 예술의 향연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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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는 불교의 성지일 뿐 아니라 빼어난 자연풍광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지이다. 통도사의 '무풍한송로'는 걷기에도 좋아 2018년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되었다. 그런데 이 길 주변에는 많은 바위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각석이다. 각석에는 사람의 이름과 역사 기록이 있다. 통도사에서는 이를 통합하여 '이름바위'라고 부른다. 관심을 가지고 이름바위를 탐구한 지 벌써 15년이 지났다. 그동안 찾은 바위가 137개, 이름이 1,981명이다. 하지만 이것보다 많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이름을 남기기를 원한다. 한국인의 낙서 문화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그림과 글자를 즐겨 남기는 민족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낙서는 통도사와 가까운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 각석이다. 반구대 암각화가 선사시대의 그림 낙서라고 한다면, 천전리 각석은 선사시대와 그 이후의 역사가 공존하는 그림과 문자 낙서로 가득하다. 한때 화랑들의 이름이 많이 새겨져 있어 화랑 각석이라 했다. 전국 어디에나 풍광 좋은 곳에 문자와 이름을 새긴 바위들이 많다.

 

통도사뿐만 아니라 범어사와 해인사와 같이 계곡을 끼고 있는 산사의 바위에는 이름바위가 존재한다. 이름바위는 그 지역을 밝혀 줄 소중한 자산이며 역사의 방명록으로 역사 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이름바위에는 사람의 이름뿐만 아니라 역사적 기록과 시문을 남겼다.

 

이름바위

통도사에서 이름바위가 가장 많은 곳은 통도사 산문 입구에서 무퐁한송로를 지나 부도원까지 이르는 길이다. 바위는 길가와 산 쪽 그리고 하천에 있다. 이름바위를 살펴보면 전문 석수장이가 새긴 이름은 한자 이름이 뚜렷하다. 그리고 인근 지역의 관료나 권세, 부유함에 따라 이름의 크기와 굵기가 달랐다. 권세가 있는 사람들은 보기 좋은 장소의 바위를 택했다.

이름바위

심지어 이미 새겨진 이름을 파내고 자신의 이름을 크고 굵게 새긴 경우도 있었다. 이름바위가 성행했을 때는 이름의 크기 경쟁이 치열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름바위에 붉은색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름을 새긴 후에 색칠한 듯하다. 최근에 새긴 이름들은 개인이 새긴 것으로 새김이 다소 서툴고 가늘고 투박한 편이다.

 

이름이 새겨진 스님들

이름바위 중에 스님으로 생각될 수 있는 이름은 30명 정도이다. 가장 오래된 것은 1680년 차왜 영접관들의 이름을 남산에 새긴 죽봉과 취원이다. 당시에는 전문적인 각석자가 없어서 통도사의 스님이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최근은 1968년 입산하면서 새긴 혜공이다. 부도바위에는 특히 스님들의 부도마애비를 새겼다.'화엄종주 애운당봉흡출세탑', '관허대사 병형출세탑'으로 총 4개의 부도마애비가 있다. 공통점은 화엄종 계통의 스님으로서 통도사에 주석했던 19세기 중후반의 고승이다. 

 

화엄종주 대운당 봉흡  스님은 1860년대 통도사에 주석한 스님이다. 스님은 각종 탱화 조성에 참여하여 증명으로 그 이름을 올렸다. 내원사 아미타삼존탱(1857), 통도사 아미타회상도, 백련암 신중탱화(1864), 안양암 칠성탱(1866), 통도사동치 3년 현왕탱과 신중도 등이다. 그리고 현재의 안양암인 '통도사보상암신건기 현판'(1868)에는 건물 신축 때 대운봉흡이 3량을 시주한 기록이 있다. 그는 청허휴정(서산대사)의 문인이었다. '보상암' 현판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현재 통도사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구봉당 지화 스님은 통도사 '지장전 중수번와개금기 현판'(1845)에 1량 시주, '사리탑중수기 현판'(1872)에 10량 시주의 기록이 있다. '창주선교양종구봉당지화대 사지 진(1878)'의 영정이 영각에 있다. 사리탑 중수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보아 당시 주지 스님의 소임을 맡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건운당 스님은 밀양 표충사 승련암 구품탱화(1882) 증명에 건운선관의 이름이 있다. 부도바위에 이름이 새겨진 스님의 공통점은 화엄종주로서 통도사의 중요 직책을 맡은 스님이며, 부도원에 스님의 부도가 있다. 또 휴정 스님의 법맥을 이은 스님으로 여겨진다.

 

선자바위에 새겨진 도총섭 포령당 유종 스님은 통도사 소속이었다. 도총섭은 조선시대의 최고 승직으로 임진왜란 때 선조가 의승군의 궐기를 부르짖고 일어선 서산대사 휴정에게 8도 선교 16종 도총섭의 승직을 제수한 이후 보편화된 직명이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는 승군의 대장 격이자 동시에 전국 사찰과 승려를 통솔 감독하는 위치에 있었다. 통도사 중흥의 기초를 닦은 구하 스님은 통도사 주지로서 현재 무풍교 석교 방함과 무풍 너럭바위, 청류길 세 곳에 이름이 새겨져 있다.

 

자장동천의 세이석

예로부터 산과 계곡의 경치가 빼어난 곳을 동천洞天이라 불렀는데 통도사에는 두 곳이 있다. 통도사 입구 계곡의 '청류동천'과 자장암의 '자장동천'이다. 자장동천은 풍류를 즐기던 스님들이 시회를 즐기기도 하였다는 기록이 경봉 스님의 일기에 보인다. 구하 스님과 경봉 스님은 자장동천을 노래하는 시를 남겼다.

 

통도사 자장암을 찾는 사람들 중에는 자장동천을 자장암 주차장 아래쪽이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산길이나 계곡을 따라가면 더 넓고 풍경 좋은 곳이 있음을 알게 된다. 산길을 다라 걷다 약 100m 지점 아래 하천으로 내려가면 큰 너럭바위가 있다. 이 바위와 조금 위쪽의 바위가 넓기에 한때 풍류객들의 시회가 열린 장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너럭바위에는 비록 '폭'자는 깨져서 보이지 않지만 '자장폭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초팔일서'는 글자가 희미하고 글 쓴 사람의 이름도 마모가 심해 알 수가 없다. 초파일 석가모니의 탄신일이기도 하지만 자장 스님의 탄생일이기도 하다.

 

이 너럭바위에서 서쪽에 물이 흐르고 그 곁으로 바위가 직각으로 깨진 곳이 보인다. 이곳에 세이석이란 글자가 역시 희미하게 새겨져 있다. 세이석은 귀를 씻은 곳이다. 자장 지계의 사실적 장소이다. 선덕여왕의 국사 요청을 한마디로 거절한 후, 국사 요청을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며 다음과 같이 말을 하였다. "내 차라리 계를 지키고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깨뜨리고 백 년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 말을 전해 들은 왕은 출가를 허락하였다.

 

자장 스님은 계를 지키겠다며, 국사 요청을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다며 흐르는 물로 귀를 씻어 '세이석'이라 새겼다고 한다. 글씨는 자장 스님의 친필로 전해 오지만 사실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한 권으로 읽는 통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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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석교, 삼성반월교

삼성반월교는 일주문 동남쪽에 위치하여 통도천의 남북을 연결하는 돌다리로 1937년 경봉 스님이 건립하였다. 삼성반월은 세 개의 별(三星)과 반달(半月)을 뜻하며, 이는 곧 세 개의 짧은 획과 하나의 긴 획으로 구성된 마음 '심心' 자를 상징한다.

통도사 삼성반월교

두 교각 사이에 형성된 세 개의 원과 그 위에 형성된 아치형의 다리로 구성된 석교의 형태는 마음 '심心' 자를 풀어서 조형한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삼성반월교는 깨끗한 한 가지 마음으로 건너야 하는 다리, 즉 일심교一心橋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래서 이 다리에는 난간이 없고 폭도 좁다. 헛된 생각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면 다리에서 떨어질 수도 있음을 일깨우는 것이다.

 

이 다리를 건립한 경봉 스님은 통도사 일주문 옆의 징검다리를 장마철에도 안전하게 건너 다닐 수 있는 튼튼한 다리로 바꾸어 놓겠다는 원력을 품고 공사에 충당할 자금을 꾸준히 모았으나 당시 통도사의 경제 상황으로 사찰의 기금만으로는 다리를 건립할 여력이 부족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인천에 거주하는 김치수 거사가 스님을 찾아와서 이들의 불편한 다리를 고치기 위해 불공을 드리고자 하였다.

 

경봉 스님은 그를 냇가로 데리고 가서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계곡에 튼튼한 다리를 놓아 수많은 사람의 다리 노릇을 해 주는 것이 더 큰 공덕이 된다는 것을 일깨웠다. 법문을 들은 김치수 거사는 크게 감동하여 다리를 짓는 불사에 동참할 것을 약속하고 거금을 시주하였다.

 

이에 그동안 모아 놓은 기금과 김치수 거사의 시주금을 합하여 1937년 2월 17일 공사를 시작하여 같은 해 6월 5일에 낙성식을 가졌다. 낙성식에서 경봉 스님은 "통도사를 창건한 지도 벌써 1,300년, 그동안 시냇물에 이르러 몇 억만 명이나 신을 벗고 건넜을 것인가. 오늘 삼성반월교가 조성됨은 인연이 도래하여 꽃과 열매가 맺어짐과 같도다."라는 법문을 남겼다. 다리의 양측 표지석에 새겨진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와 '영조운산리影照雲山裏'라는 글씨는 경봉 스님의 친필이다.

어긋난 짝사랑 '호혈석'

먼 옛날 통도사 백운암에는 젊고 잘생긴 스님이 홀로 기거하며 수행생활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경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았음은 물론 아침, 저녁 예불을 통해 자신의 염원을 부처님께 성심껏 기원하였다. 여느 때처럼 저녁 예불을 마치고 책상 앞에 앉아 경을 일고 있는데 아리따운 아가씨의 음성이 들려왔다. 목소리만큼 아름다운 처녀가 봄나물 가득한 바구니를 든 채 서 있는 것이었다.

 

나물을 캐러 나왔다가 그만 길을 잃은 처녀가 이리저리 해매면서 길을 찾다 백운암으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이 막막하던 차에 불빛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단숨에 달려온 처녀는 어렵더라도 하룻밤 묵어가도록 허락하여 줄 것을 애절하게 호소하였다. 그러나 방이 하나뿐인 곳에서 수행 중인 젊은 스님으로서는 매우 난처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던 스님은 단칸방의 아랫목을 그 처녀에게 내어 주고 윗목에서 정좌한 채 밤새 경전을 읽었다.

호혈석(응진전, 극락전)

스님의 경 읽는 음성에 처녀는 마음을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날 이후 처녀는 스님에게 연정을 품게 되었고, 마음은 늘 백운암 스님에게 가 있었다. 스님을 흠모하는 마음은 날이 갈수록 깊어 가서 처녀는 상사병을 얻게 되었다. 식음을 전폐하고 좋은 혼처가 나와도 고개를 흔드는 딸의 심정을 알지 못하는 처녀의 어머니는 안타깝기만 했다. 그러다가 백운암에서 만난 젊은 스님의 이야기와 함께 이루지 못할 사랑의 아픔을 숨김없이 듣게 되었다. 생사의 기로에 선 딸의 사연을 알게 된 처녀의 부모는 자식의 생명을 건지기 위해 백운암으로 그 스님을 찾아갔다.

 

딸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한 살림 차려 줄 것을 약속하며 혼인을 애걸했지만 젊은 스님은 결심을 흩트리지 않고 경전 공부에만 전념하였다. 죽음에 임박한 처녀가 마지막으로 스님의 얼굴을 보고 싶다 하였으나 그마저 거절하고 말았다. 얼마 후 처녀는 사모하는 한을 가슴에 안은 채 목숨을 거두고 사나운 영축산 호랑이가 되었다.

 

그 후 긴 시간이 지나고, 젊은 스님은 초지일관한 결과로 드디어 서원하던 강백이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됐다. 많은 학승들에게 경전을 가르치던 어느 날 강원에 갑자기 거센 바람이 일며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큰 호랑이가 지붕을 넘나들며 포효하고 문을 할퀴며 점점 사나워지기 시작하였다.

 

호랑이의 행동을 지켜보던 대중들은 분명 스님들과 어떤 사연이 있을것이라는 데 중지를 모으고 각자 저고리를 벗어 밖으로 던졌다. 호랑이는 강백 스님의 저고리를 받더니 갈기갈기 마구 찢으며 더욱 사납게 울부짖었다. 대중들이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 얼굴만 쳐다보자 강백 스님은 조금도 주저함 없이 속세의 인연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나서 합장 예경하고 호랑이가 포효하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호랑이는 기다렸다는 듯 그 스님을 입으로 덥석 물고 어둠 속 어디론가 사라졌다.

 

다음 날 날이 밝자 산중의 모든 사람들이 스님을 찾아 온 산을 헤맸다. 깊은 골짜기를 다 뒤졌으나 보이지 않던 스님은 젊은 날 공부하던 백운암 옆 등성이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처녀의 원혼이 호랑이로 태어나 변고가 생긴 것이라 생각하고 호랑이의 혈血을 제압할 목적으로 붉은색이 큼직한 반석 2개 도량 안에 놓았다. 이를 '호혈석虎血石' 또는 '호압석虎壓石'이라 부른다. 이것은 상로전의 응진전 바로 옆과 하로전의 극락전 옆 북쪽에 남아 있다.

 

 

<한권으로 읽는 통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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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용이 통도사를 지키다

통도사 창건설화에는 자장 스님이 문수보살에게 수기를 받는 장면이 등장한다. 여기서 문수보살은 자장 스님에게 "그대의 나라 남쪽 영축산 기슭에 나쁜 용이 거처하는 연못이 있는데, 거기에 사는 용들이 나쁜 마음을 품어서 비바람을 일으켜 곡식을 상하게 하고 백성들을 괴롭히고 있다. 그러니 그대가 그 용이 사는 연못에 금강계단을 쌓고 이 불사리를 봉안하면 재앙을 면하게 되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것이다."라고 이른다.

구룡지

스님은 귀국하여 영축산을 찾아 나쁜 용들이 산다는 못에 이르렀다. 정말로 아홉 마리의 용(九龍)이 나쁜 짓을 일삼고 있었는데, 자장 스님이 설법을 하자 용들이 항복하여 물러났다. 그 가운데서 다섯 마리는 오룡동으로, 세 마리는 삼동곡으로 도망갔다. 그중 한 마리는 급히 도망가면서 산문 어귀 큰 바위에 부딪쳐 피를 흘리고 갔는데 지금도 바위 표면에 핏자국이 남아 있어 사람들이 용혈암이라 부르고 있다.

매년 5월 5일 단오절을 맞아 구룡지에서 용왕재

또 눈먼 용 한 마리가 어디도 가지 못하고 통도사에 남게 되었는데, 용이 자장 스님께 통도사를 지키는 호법용이 되겠노라 청했다. 스님은 용의 청을 들어 못을다 메우지 않고 한쪽 귀퉁이에 작은 연못을 두어 용이 머물도록 했다. 그것이 바로 금강계단 옆 구룡지이다. 구룡지는 작은 크기에 깊이도 얼마되지 않지만 심한 가뭄이 와도 전혀 수량이 줄지 않고 아무리 비가 와도 넘치지 않는 등 영험함을 지니고 있다. 통도사는 단옷날이 되면 화마火魔를 제압하기 위한 단오절 용왕재를 지내는데, 이곳 구룡지에서 지낸다.

 

인고와 지계의 상징 '자장매'

경내에 수령이 400년 가까운 매화나무가 있다. 일명 '자장매화'다 통도사를 창건하신 자장 스님을 기리며 숭고한 수행상을 잃지 않고자 '자장매'로 명명해 온다. 매화는 매서운 추위가 뼛속까지 스밀 때 향이 더욱 짙어져 마치 수행자의 구도 행각과 닮은 데가 있는데 "계를 지키며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파하고 백 년을 살지 않겠다."는 자장 스님의 결연한 가르침과 맞닿아 있다.

통도사 자장매(홍매)

이 나무는 임진왜란 이후 영각이 소실되어 다시 재건하게 되었는데, 그대 홀연히 섬돌 아래 싹이 텄다고 한다.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워 수많은 상춘객들에게 인기가 있다. 자장 스님의 계율정신을 기리고 계승한다는 의미를 품은 '자장매'는 지계정신을 상징하며 고매한 향기를 풍긴다.

 

통도사에는 홍매의 상징인 자장매뿐만 아니라 백매, 청매 등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다. 또 배롱나무, 산수유 등 갖가지 꽃나무들이 따뜻한 시기에 꽃망울을 떠뜨린다. 어떤 의미에서 꽃은 장엄의 도구이지만, 추운 겨울을 참아 낸 인고의 정신과 비바람을 견디고 굳건히 정진하는 수행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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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림의 어원에 대해서는 《대지도론》에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승가를 번역하면 중衆이라고 한다. 많은 비구들이 한 곳에서 화합하는 것을 승가라고 한다. 비유하면 많은 나무가 모인叢 것을 숲林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으며, 이 외에도 산스크리트를 인용하며 여러 가지 설명을 하지만 대체로 많은 대중이 울창한 숲과 같이 모여서 수행하는 것을 뜻한다. 현재 조계종단에서는 선원, 율원, 염불원, 강원 등의 수행도량과 교육기관이 갖추어진 곳을 총림으로 지정한다. 하지만 선원, 율원, 염불원, 강원을 모두 갖추고 종단의 정식인가를 받은 곳은 8대 총림 중 현재 영축총림 통도사가 유일하다.

1990년대 초반 부도전을 정비하면서 건립한 총림문.&nbsp; 靈鷲叢林 편액

영축총림(靈鷲叢林)

일제강점기 불교계는 신교육 우선 정책과 왜색화로 강원은 지방학림으로 전환되고, 선禪을 공부하는 수좌들은 선방에 기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관권에 의탁하면서 종단과 사찰의 운영권을 갖고 있던 주지들은 점차 전통선원에 대한 인식이 희박해져 갔다. 그러나 통도사는 선원의 부흥과 전통강원의 설립에 이어 율부를 신설하면서 삼학을 구족하였고, 또한 현재의 염불원으로 일컬을 수 있는 '만일염불회'를 만들어 1953년까지 이어 나갔다.

 

일제강점기 통도사의 강원, 선원, 율원, 염불원은 오늘날 총림의 출발이 되었다. 불교계의 지형에서 통도사의 이러한 행보는 수행도량의 참모습을 지켜 나가는 모범이 되었다. 통도사에는 1899년 7월 이전 백운선원이 존재하여 그 선맥을 이어 오고 있었다. 여기서 1899년 근대 최초의 선원으로 꼽히는 퇴설선원을 개설한 경허 스님이 통도사 백운선원으로 와 1900년 보광선원을 개설하면서 경허 스님에 의해 주도된 정혜결사와 만일염불화활동이 전해졌다. 이후 1914년 성해 스님이 보광선원장이 되어 납자들의 화두참구를 지도하면서 통도사의 수선가풍은 일신되었다.

 

1905년에는 통도사 내원암에 선원을 개설하여 방한암 스님을 조실로 추대하였고, 1916년에는 안양암 선원을 개설하여 서해담 스님을 조실로 추대하였다. 1926년에는 용성 스님이 망월사에서 열린 '만일참선결사회'를 통도사 내원암으로 옮겼다. 이는 근대불교 초기 결사운동의 두 주축이던 경허 스님의 수선결사와 용성 스님의 만일결사가 모두 통도사로 그 맥이 이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한다.

 

통도사에서 선풍이 더욱 진작된 것은 1928년 경봉 스님이 극락암 선원을 개설하여 많은 청풍납자들이 수선안거하기 시작하면서였다. 통도사가 선풍을 크게 진작시켰다는 것은 1928년 발간된 전국선원 현황에서 전국 69개 선원 중 11곳이 통도사 본 ·말사에 개설되어 있었다는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통도사는 선원의 개설과 운영에서 모법을 보였을 뿐 아니라 강원의 설립과 교육에서도 불교계의 참모습을 보였다.

 

한국불교계의 전통교육기관인 강원이 통도사에 설립된 것은 1906년이었다. 성해 스님이 황화각에 불교전문강원을 설립한 것이 그 출발이다. 성해 스님은 원장 소임을 보면서 10여 년간 후학을 양성했고, 황화각을 중수하여 1918년 6월 불교전수부 대강당도 마련하였다.

 

불교전수부는 1941년에는 '통도사 전수학원'으로 불리며 초등학교를 졸업한 승려 자제 및 그 관계자를 수용하여 불교와 기타 승려로서 필요한 과목을 중심으로 중등학교 4년 정도의 보통학을 가르치던 교육기관이었다. 통도사는 불교전통교육기관인 불교전문강원의개설에 그치지 않고 1918년 산내 말사인 옥련암에 서해담 율사를 강사로 하여 비구니 강원의 효시로 평가되는 니생강당尼生講堂을 설립하여 비구니에 대한 승려 교육에서도 선구자의 모습을 보였다.

 

통도사는 1915년 가을 율부도 신설하였다. 이로써 통도사는 사내에 삼학을 갖춘 수행도량이 되었다. 통도사 율원의 시원은 신라의 자장율사가 통도사에 금강계단을 세워 우리나라 최초 율원을 설립한 것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승려들의 기강을 세우고 올바른 율법을 가르쳐 구족계를 받게 하려는 목적에서 세웠다고 전해지고 있기 때문에 율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이를 최초의 율원으로 보고 있다.

 

출가를 위해서는 율사로부터 계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자장율사 이후 계맥이 전해졌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해담율사는 통도사의 계맥을 정리하기를 석가세존 -문수보살-자장율사-조일율사-월송율사-졸암율사-삼학율사-해담율사-구하율사로 기록하였고, 구하율사 이후는 월하율사 - 청하율사 - 현산율사 - 해남율사로 이어지고 있으니 통도사의 계맥은 오랜 역사 동안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격적으로 율원에 대한 기록이 나타난 것은 한국전쟁 직후다. 이전에 율사들에 대한 기록을 포함해 율장을 연구하고 실천했던 내요이 있기는 하나, 율원이라는 표현이 구체적으로 쓰인 것은 한국전쟁 직후 자운 스님이 통도사에서 율장을 공부하면서부터다. 이때 지관, 일우, 석암, 일타 스님 등 5`6명이 함께 공부하면서 천화율원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천화율원은 이후 자운 스님이 수행처를 옮기는 과정에서 곳곳에 붙여졌고, 해인사에도 천화율원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그러나 천화율원은 계율전문교육기관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일제강점기에도 통도사에는 강원, 선원, 율원이 세워져 전통불교의 맥을 이어 오고 있었는데 조선 후기까지 존재하다 복원되지 못한 염불원의 모습도 찾을 수 있다. 1925년 3월 10일 경봉 스님이 염불당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통도사 극락암 인근에 만일염불회를 만들어 이끈 것이 그 시초이다. 이후 근래에 통도사염불대학원이 설립되면서 염불의 맥이 내려오고 있다.

 

 

 

<한 권으로 읽는 통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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