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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가다 보면 주차장에 차를 대고도 제법 긴 거리를 걸어가야 한다. 월정사의 전나무 숲이나 통도사 무풍한송로 소나무 숲처럼 풍취를 주기도 한다. 그러나 때론 진입로가 왜 이렇게 길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긴 진입로는 우리나라 산사에만 있는 특징 중 하나이다. 

통도사 무풍한송로

짐승에게 받은 피해를 줄이려는 문을 세우다

산은 모든 면에서 인간에게 이익을 주지만 옛날에는 호랑이와 같은 위협적인 존재가 석시하는 공간이기도 했다. '호랑이가 뭐 얼마나 있다고 그렇게까지 했을까?' 할지도 모르지만 마마媽媽(천연두) 보다 더 무서운게 호환虎患이었다. 그래서 무서운 것을 빗댈 때 호환마마라고 했다.

 

또 호랑이와 관련된 유명한 속담으로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 '호랑이 없는 골에는 토끼가 왕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와 같은 것 등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산사와 관련해 섬뜩한 속담이 하나 있는데 '새벽 호랑이는 중(승려)이나 개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속담은 왜 거의 모든 산사에 산신각이 있고 그 안에 호랑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지를 단적으로 이해하게 한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많은 국토의 특성상 호환이 많았는데 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었다. 일본은 해수구제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맹수를 대량 사살했으며 이로 인해 1925년 무렵에는 호랑이와 표범 및 늑대가 거의 전멸했다.

 

심산유곡에 위치한 산사는 호환에 가장 취약한 곳이다. 그래서 산사는 진입로를 최대한 길게 빼고 인적을 남겨 이 문제를 극복하려고 했다. 아무래도 인적이 있으며 짐승의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긴 진입로에 인적을 남기는 방법으로 산사에서는 중간중간에 문을 세웠다. 그런데 이 문은 담도 없고 문짝도 없다. 그저 문만 덩그러니 놓인 다소 우스꽝스러운 '문 없는 문'이 만들어진 것이다.

 

산사는 수미산으로 올라가는길

그리스 로마 신화를 보면, 그 중심에 제우스와 12신이 사는 올림포스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산은 신화 속에서 우주의 중심이 되는 곳이자 신들이 거처하는 공간이다. 이를 우주산이라고 한다. 인도에서 우주산에 해당하는 것이 바로 수미산須彌山이다.

 

올림포스산 정상에 제우스가 사는 것처럼, 수미산 정상에도 인도의 하느님인 제석천이 32명의 신들을 거느리고 살고 있다. 사찰에서는 이 제석천이 머무는 곳을 불상을 모시는 신성한 공간으로 선택했다. 그래서 불상을 모신 좌대를 수미좌 라고 하는데, 이는 불상에 최고의 존업성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수미산은 너무 높아서 산의 중턱을 해와 달이 돌고 있다. 그래서 해 쪽이 되는 세상은 낮이 되고 달 쪽이 되면 밤이 된다. 이 수미산의 중턱 4방위에는 4천왕이 살고 있다. 이들은 모든 악으로부터 인간세계를 지키며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수미산은 신들의 세계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성스러운 성산聖山이다. 즉 인간계와는 단절된 성스러운 공간인 것이다. 그래서 수미산 주위로는 마치 성의 해자처럼 동그랗고 넓은 바다가 전개되어 있다.

 

이를 향수해香水海처럼 하는데 이는 수미산의 성역에 대한 권위와 인간이 범접을 차단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불상을 수미산 정상에 있는 제석천의 거처에 모신다. 그러다 보니 산사에 간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수미산을 올라가는 것과 같은 구조를 취하게 된다. 즉 '속俗'에서 성聖으로의 전환'이 곧 산사에 이르는 길인 것이다.

 

문은 있는데 문짝은 없다

종교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 행복에는 더러움을 버리고 청정해지려는 다시 말해 속俗에서 성스러움으로 이행한다는 측면이 존재한다. 산사의 입구에 이르면 으레 계곡과 다리를 만나게 된다. 이는 산을 등지고 앞쪽으로는 물을 향하는 것으로, 풍수에서 흔히 말하는 배산임수 라는 것이다.

 

물을 건넌다는 것은 속진의 더러움을 내려놓고 성스러운 부처님의 공간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도 된다. 즉 냇물과 다리를 통해서 우리는 수미산 주변의 향수해를 건너는 것이다. 여기에 놓여 있는 다리의 이름은 흔히 해탈교解脫橋나 피안교彼岸橋인데 이는 다리 넘어가 해탈이나 피안의 경계인 깨달음의 성역임을 의미한다.

 

종교는 상징으로 표현되는 세계이다. 그러므로 상징에 대한 이해는 종교의 핵심을 관통한다. 냇물과 다리를 건너면 사찰의 첫 번째 문인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문짝도 담도 없는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된 특이한 구조의 문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부터 성산인 수미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일주문은 본래 인도불교에서 부처님의 탑과 같은 성스러운 대상을 기리는 기념문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이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넘어서 우리나라까지 전파되기에 이른다. 일주문과 형제 관계를 이루는 것으로는 왕릉이나 충신, 열녀를 기리는 홍살문이 있다. 이들 문의 특징은 문짝과 담이 없는 동시에 문의 뒤쪽에 기릴 만한 대상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불교의 정신을 잘 드러내 주고 있다.

 

일주문을 넘어서 걷다 보면, 두 번째로 만나게 되는 것이 천왕문이다. 천왕문은 수미산의 중턱에서 사방을 관장하는 네 명의 천왕을 모신 문이다. 그래서 문의 안으로 들어가면 우락부락한 모습을 한 네 명의 거구가 각기 다른 무기를 잡고 악귀를 밟고 서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사찰을 모든 악으로부터 수호한다는 상징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천왕문을 지나면 해탈문이 나오는데 여기서부터가 수미산 정상의 입구에 해당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일주문과 천왕문이 '문짝 없는 문'이라면, 해탈문은 '문 없는 문'이라는 점이다. 해탈문은 사실 문이라기보다는 2층 누각 아래의 어두운 터널과 같은 통로일 뿐이다. 무릉도원 이야기로 유명한 도연명의 <도화원기>에서 무릉의 어부가 동굴을 통과해 이상향을 발견하는 것처럼, 성聖을 좇아 속俗을 버린 중생은 어둠의 터널을 건너 부처님이 계신 밝은 이상향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붓다를 상징하는 장엄한 석탑과 황금빛 불상이 환하게 빛나는 깨달음의 성城인 대웅전을 만난다.

 

 

 

 

자현스님 <세상에서 가장 쉬운 불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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