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불모산 깊은 곳에는 가야불교의 오래된 이야기를 품은 장유사(長遊寺)가 있습니다. 장유사는 허황옥 왕후와 함께 가락국에 왔다고 전해지는 장유화상과 깊은 인연을 지닌 사찰입니다. 이곳에는 서기 48년 창건설부터 장유화상 사리탑, 허황옥과 왕후사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유사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와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구분해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해 장유사에는 어떤 역사가 숨어 있을까요?

김해 불모산 장유사
장유사는 경상남도 김해시 불모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로,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입니다. 장유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사찰의 규모나 건물의 오래됨보다 이곳에 전해지는 가락국과 가야불교의 기억입니다. 장유사에는 허황옥 왕후, 김수로왕 그리고 장유화상으로 이어지는 가야의 불교 전승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장유화상이 서기 48년 가락국으로 건너와 장유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장유화상은 누구일까?
장유사의 창건자로 전해지는 인물이 장유화상(長遊和尙)입니다. 사찰에 전해지는 기록에서는 장유화상을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이자 승려로 설명합니다. 허황옥 왕후가 김수로왕과 혼인하기 위해 가락국으로 올 때 장유화상도 함께 왔으며, 이후 불모산에 머물며 수행하고 장유사를 창건했다고 전합니다. 그 시기가 바로 서기 48년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가야 지역에는 고구려의 공식적인 불교 전래인 372년보다 약 300년이나 먼저 불교가 들어온 셈입니다. 그래서 장유사는 오랫동안 가야불교와 불교 남방전래설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사찰로 언급되어 왔습니다.
장유사는 정말 서기 48년에 세워졌을까?
여기서부터는 조금 신중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서기 48년 장유화상이 장유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는 장유사에 전해지는 창건 전승입니다. 현재까지 이를 1세기의 역사적 사실로 확정할 수 있는 충분한 고고학적 근거가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삼국유사』에 전하는 가락국 관련 기록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합니다. 수로왕과 허황옥이 살았던 당시에는 아직 이 지역에 절을 세우고 불법을 받드는 일이 없었으며, 제8대 질지왕 때인 452년에 이르러 사찰이 세워졌다고 전합니다. 따라서 장유사를 소개하면서 ‘서기 48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서기 48년 장유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합니다.
허황옥과 가야불교
장유사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 허황옥 왕후입니다.『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바다를 건너와 김수로왕과 혼인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허황옥이 실제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아유타국이 오늘날 정확히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두고는 여러 견해가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고대 가야가 바다를 통해 외부 세계와 교류했던 역사적 배경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허황옥 전승에 장유화상이 결합하면서 인도-허황옥-장유화상-가락국-불교로 이어지는 독특한 가야불교 이야기가 형성되었습니다.
452년에 세워졌다는 왕후사
가야불교를 살펴볼 때 장유사와 함께 주목해야 할 사찰이 왕후사(王后寺)입니다. 왕후사는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삼국유사』 등에 관련 기록이 전합니다. 가락국 제8대 질지왕이 452년 시조모인 허황옥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로왕과 허황옥이 혼인했던 곳에 왕후사를 세웠다고 합니다. 왕후사는 이후 장유사가 인근에 들어서면서 폐사되었다고 전합니다. 다만 왕후사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를 놓고는 여러 견해가 있기 때문에 현재 장유사 주변의 특정 장소를 확정적으로 왕후사지라고 말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장유사에서 꼭 봐야 할 장유화상 사리탑
장유사를 방문한다면 꼭 살펴봐야 할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바로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입니다. 장유화상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전해지는 승탑으로, 장유사의 오랜 역사와 장유화상 신앙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입니다. 전승에서는 가락국 제8대 질지왕이 장유화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역사와 전승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리탑은 5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남아 있는 탑의 형태와 제작 수법을 살펴보면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사리탑 역시 ‘가락국 시대부터 내려온 전승’과 ‘현재 남아 있는 석조물의 제작 시기’를 구분해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장유화상이 수행했다는 토굴
장유사에서 오른쪽으로 약 60m 아래에는 장유화상이 처음 수행했다고 전해지는 토굴이 있습니다. 골짜기 끝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공간을 마련한 형태인데, 이 축대 역시 허황옥과 함께 온 아유타국 사람들이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물론 이것 역시 1세기 유적임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장유화상의 수행을 기억하고 기리는 장소로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가야에는 정말 불교가 먼저 들어왔을까?
장유사를 둘러싼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가야에는 정말 고구려보다 먼저 불교가 들어왔을까?” 한국 불교사에서는 일반적으로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72년을 공식적인 불교 전래의 중요한 시점으로 봅니다. 반면 장유사 전승에서는 장유화상이 서기 48년에 가락국에 들어와 불교를 전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두 시기에는 300년이 넘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야에는 중국 대륙을 거치는 북방 경로와 별개로 바다를 통한 남방 불교문화의 유입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제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장유화상의 1세기 가락국 도래와 장유사 창건을 입증할 결정적인 자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확정된 역사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야불교를 공부할 때는 ‘가능성’과 ‘전승’을 ‘확정된 역사’로 바꾸어 말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장유사가 중요한 이유
그렇다고 장유사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장유사는 아주 흥미로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장소입니다. 가야 사람들은 무엇을 믿었을까? 바다를 통해 가야로 들어온 사람들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왔을까? 허황옥 이야기에 왜 불교 전승이 결합되었을까? 장유화상이라는 인물은 언제부터 가야불교의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기 시작했을까? 이러한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장유사는 단순히 산속에 자리한 사찰 하나가 아니라 가야의 역사와 불교, 설화와 지역의 기억이 만나는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김해 장유사를 걸으며
사찰은 건물만 보는 곳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 땅에 오랫동안 쌓여온 사람들의 기억을 읽는 곳이기도 합니다. 장유사에는 장유화상이 수행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허황옥 왕후의 이야기가 있으며, 가야에 불교가 언제 들어왔는지를 둘러싼 오래된 물음이 남아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서부터 전설일까요? 그 경계를 찾아가는 것 또한 장유사를 답사하는 즐거움일 것입니다. 김해 불모산 장유사.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가’를 따지는 것보다 가야 사람들은 불교를 어떻게 만나고, 후대 사람들은 그 만남을 어떻게 기억해 왔는가를 생각하며 걸어볼 때 더욱 특별해지는 사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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