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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꽃은 자취를 감춥니다. 그런데 오히려 이때 꽃망울을 터뜨리는 나무가 있습니다. 바로 애기동백입니다. 분홍빛 또는 흰빛 꽃을 가득 피운 모습을 보면 흔히 동백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잘 아는 동백나무와는 조금 다릅니다. 특히 꽃이 지는 순간을 보면 그 차이가 더욱 재미있습니다.

애기동백

애기동백은 어떤 식물일까?

애기동백의 학명은 **Camellia sasanqua Thunb.**입니다. 차나무과 동백나무속에 속하는 상록 활엽 관목 또는 작은 나무로, 일본이 원산지입니다. 사계절 푸른 잎을 유지하며 늦가을부터 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이 대표적인 특징입니다. 꽃은 흰색과 연분홍, 진분홍 등으로 다양합니다. 원종은 주로 흰색의 홑꽃을 피우지만 오랜 원예 육종을 통해 다양한 색과 모양의 품종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꽃 색깔만 가지고 애기동백과 동백을 구별하기는 어렵습니다.

애기동백꽃은 언제 필까?

애기동백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개화시기입니다. 보통 늦가을부터 겨울에 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품종과 지역의 기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인 동백나무보다 일찍 꽃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꽃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계절, 정원이나 공원에서 동백을 닮은 분홍색과 흰색 꽃이 활짝 피어 있다면 애기동백인지 한번 살펴볼 만합니다. 다만 개화시기는 기후와 품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꽃이 핀 시기만으로 애기동백이라고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애기동백과 동백꽃의 차이는?

애기동백과 동백나무는 같은 동백나무속에 속해 꽃 모양이 상당히 비슷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가장 재미있는 방법은 꽃이 아니라 나무 아래를 보는 것입니다. 애기동백은 꽃이 질 때 꽃잎이 한 장씩 떨어져 흩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동백나무는 꽃잎이 서로 붙어 있는 상태로 꽃송이 전체가 떨어지는 모습이 대표적입니다. 따라서 나무 아래에 꽃잎이 낙엽처럼 소복하게 흩어져 있다면 애기동백을 구별하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 잎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애기동백의 잎은 짙은 녹색에 광택이 있으며 가장자리에 잔 톱니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동백나무보다 잎이 작고 얇은 편입니다. 꽃도 애기동백은 비교적 활짝 펼쳐지는 느낌이 강하고 노란 수술이 눈에 잘 띄는 경우가 많습니다.

애기동백과 동백 한눈에 비교하기

구분 애기동백 동백나무
학명 Camellia sasanqua Camellia japonica
주요 개화시기 늦가을~겨울 늦겨울~봄
비교적 작고 잔 톱니가 뚜렷한 편 비교적 크고 두꺼운 편
꽃 모양 비교적 활짝 펼쳐지는 편 도톰하고 단정한 느낌
꽃이 질 때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는 편 꽃송이가 통째로 떨어지는 것이 특징
향기 일부 품종에서 향기가 있음 대체로 향기가 약함

단, 원예 품종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실제 식물을 정확하게 동정하려면 꽃뿐 아니라 잎, 꽃받침, 열매 등 여러 특징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애기동백'은 어린 동백나무일까?

이름 때문에 생기기 쉬운 오해가 있습니다. 애기동백은 어린 동백나무를 뜻하지 않습니다. 애기동백(Camellia sasanqua)과 동백나무(Camellia japonica)는 같은 동백나무속에 속하지만 서로 구별되는 식물입니다. 따라서 작은 동백나무가 자라서 큰 동백나무가 되는 것처럼 애기동백이 자라서 동백나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애기동백 키우는 방법

애기동백은 산성 토양을 좋아하며 물이 잘 빠지면서 적당한 수분이 유지되는 환경이 좋습니다. 햇빛을 받을 수 있는 곳에서 잘 자라지만 겨울철 차갑고 건조한 바람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곳은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꽃봉오리가 발달하는 시기에는 지나치게 건조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면 꽃이 진 뒤에 하는 것이 좋습니다. 너무 늦게 가지치기를 하면 새롭게 형성되는 꽃눈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꽃보다 떨어진 꽃잎이 알려주는 애기동백

애기동백을 알고 나면 늦가을과 겨울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처음에는 나무 위의 분홍빛 꽃에 눈길이 가지만 애기동백의 진짜 매력은 어쩌면 꽃이 진 뒤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한 송이가 통째로 툭 떨어지는 동백과 달리 애기동백은 꽃잎을 한 장, 한 장 내려놓습니다. 바람이 불면 분홍빛 꽃잎이 흩날리고 나무 아래에는 꽃잎이 소복하게 쌓입니다. 동백이 겨울의 끝자락을 알리는 꽃이라면, 애기동백은 겨울이 오고 있음을 먼저 알려주는 꽃입니다. 다음에 늦가을 길을 걷다가 동백을 닮은 꽃을 발견한다면 꽃만 바라보지 말고 나무 아래도 한번 살펴보세요. 꽃잎이 하나둘 흩어져 있다면 우리가 무심코 동백꽃이라고 불렀던 그 꽃이 애기동백꽃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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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을 걷다 보면 대웅전이나 관음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전각을 만나게 됩니다. 바로 나한전(羅漢殿) 또는 ​**응진전(應眞殿)**입니다. 전각 안으로 들어가 보면 더욱 흥미롭습니다. 근엄한 얼굴, 웃는 얼굴, 깊은 생각에 잠긴 얼굴까지 저마다 다른 표정의 나한들이 앉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한은 누구이며, 왜 절에는 16 나한과 500 나한을 모시는 것일까요?

오백나한(ai)

나한이란 무엇일까?

나한(羅漢)​은 ‘아라한(阿羅漢, Arhat)’을 줄여 부르는 말입니다. 불교에서 아라한은 수행을 통해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 등의 번뇌를 끊고 해탈을 성취한 성자를 뜻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수행하여 깨달음에 이른 제자들이 대표적입니다. 따라서 나한은 단순히 부처님 곁에 있었던 제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직접 수행하여 그 가르침을 성취한 사람이라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나한과 보살은 무엇이 다를까?

불교를 공부하다 보면 나한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존재가 보살(菩薩)​입니다. 나한은 번뇌를 끊고 해탈을 성취한 성자를 뜻합니다. 반면 대승불교에서 보살은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는 동시에 모든 중생이 깨달음에 이를 수 있도록 돕겠다는 서원을 세우고 수행하는 존재입니다. 이를 흔히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고 표현합니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한은 자기만을 위해 수행하고 보살은 남을 위해 수행한다’고 단순하게 구분해서는 안 됩니다. 아라한 역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침을 전하고 자비를 실천했습니다. 두 존재의 차이는 이기적인가 이타적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불교 전통에서 어떤 수행의 이상을 더욱 강조했는가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절에는 왜 16나한을 모실까?

16나한(十六羅漢)​은 불법을 지키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대표적인 열여섯 명의 아라한을 말합니다. 16나한 신앙의 중요한 문헌적 근거 가운데 하나가 《대아라한난제밀다라소설법주기》, 흔히 **《법주기》**라고 부르는 문헌입니다. 이 전승에 따르면 나한들은 부처님의 열반 이후에도 세상에 머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며 미래불인 미륵불이 나타날 때까지 불법을 지킨다고 합니다. 따라서 사찰에 16나한을 모시는 것은 과거의 제자를 기념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부처님은 열반하셨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은 세상에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500나한은 누구일까?

사찰에 따라서는 열여섯 명이 아니라 수많은 나한을 모신 오백나한전(五百羅漢殿)​을 볼 수 있습니다. 불교 문헌에는 여러 맥락에서 ‘500명의 아라한’이 등장합니다. 대표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한 뒤 열린 제1차 결집에서 500명의 아라한이 모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정리하고 전승했다는 전통이 유명합니다. 그래서 오백나한은 넓게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어받은 수많은 깨달은 제자들의 공동체를 상징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동아시아의 오백나한 신앙 전체를 제1차 결집에 참여한 500명과 완전히 동일하다고 보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오백나한 신앙과 각각의 나한에 대한 명칭 및 도상은 오랜 세월 여러 불교 전승과 결합하면서 발전했기 때문입니다.

나한들의 얼굴은 왜 모두 다를까?

나한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재미있는 특징을 발견하게 됩니다. 부처나 보살상이 비교적 이상화되고 장엄한 모습으로 표현되는 데 비해 나한상은 매우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나한은 웃고 있고, 어떤 나한은 화가 난 듯 보입니다. 눈을 크게 뜨거나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도 있으며 나이가 들어 주름진 얼굴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특히 수많은 나한을 한자리에 모신 오백나한상을 보면 마치 수백 명의 서로 다른 사람을 마주하고 있는 듯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얼굴은 나한상만이 가진 독특한 조형적 매력입니다. 수행을 완성한 성자라고 해서 모두 똑같은 모습일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모두 다르듯 수행자의 모습도 다양합니다. 그래서 나한상을 바라보다 보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인간의 모습에서 깨달음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한전과 응진전은 어떤 곳일까?

나한을 모시는 대표적인 사찰 전각이 나한전과 응진전입니다. ‘응진(應眞)’은 아라한을 나타내는 한역 표현 가운데 하나입니다. 따라서 응진전은 쉽게 말하면 나한을 모신 전각입니다. 사찰에 따라 16나한을 모시기도 하고, 오백나한을 별도의 전각에 모시기도 합니다. 한국불교에서는 나한이 깨달음을 성취한 성자인 동시에 불법을 수호하는 존재로 신앙되어 왔습니다. 또한 역사적으로 나한 신앙은 수행과 깨달음이라는 불교적 의미뿐 아니라 현실의 소원을 기원하는 민간 신앙과도 결합해 발전했습니다.

부처님은 떠났지만 가르침은 남았다

16나한과 500나한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는 어쩌면 ‘전승’​이라는 말에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처님은 열반하셨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까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수행하고, 전했던 제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에서 제자로, 제자에서 수행자로, 다시 다음 세대로. 그렇게 불법은 오랜 세월 사람과 사람을 통해 이어졌습니다. 그래서 나한전에서 수많은 나한의 얼굴을 바라보는 일은 단순히 오래된 불상을 감상하는 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저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하나였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 어쩌면 우리가 오늘 사찰에서 마주하는 나한들의 수많은 얼굴은 2,500여 년을 건너온 불법의 긴 기억을 보여주는 얼굴들​인지도 모릅니다.


핵심 정리

나한 : 수행을 통해 번뇌를 끊고 해탈을 성취한 성자
16나한 :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한다고 전해지는 대표적인 열여섯 나한
500나한 : 부처님의 가르침을 계승한 수많은 아라한을 상징하는 전통
나한전·응진전 : 나한을 모시는 사찰 전각
보살 : 성불을 향해 수행하면서 모든 중생의 깨달음과 이익을 위해 서원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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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길을 걷다가 오래된 나무나 이끼 낀 바위에 가늘고 긴 초록색 잎이 붙어 있는 모습을 본 적 있으신가요? 얼핏 보면 평범한 풀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특별합니다. 잎을 뒤집는 순간 더 신기한 모습이 나타납니다. 동글동글한 갈색 점들이 줄을 지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벌레 알일까요? 아니면 식물이 병든 흔적일까요? 정답은 둘 다 아닙니다. 오늘 소개할 식물은 꽃도 열매도 없이 포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 일엽초​입니다.

일엽초 포자

🌿 일엽초란?

일엽초의 학명은 Lepisorus thunbergianus (Kaulf.) Ching​입니다. 고란초과(Polypodiaceae) 일엽초속(Lepisorus)에 속하는 상록성 양치식물로, 우리나라에도 자생합니다. 일반적인 고사리를 떠올리면 여러 갈래로 갈라진 잎을 생각하기 쉽지만 일엽초의 잎은 갈라지지 않습니다. 가늘고 긴 하나의 잎이 뿌리줄기에서 하나씩 올라옵니다. 그래서 이름도 한 일(一), 잎 엽(葉), 풀 초(草)를 써서 ‘일엽초(一葉草)’​라고 부릅니다. 다만 일엽초라는 이름이 식물 한 포기에 잎이 딱 한 장만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땅이나 나무 표면을 기어가는 뿌리줄기에서 여러 장의 잎이 각각 올라오기 때문에 실제 모습을 보면 여러 개의 초록 잎이 나란히 자라고 있습니다.

🍃 일엽초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일엽초의 가장 큰 특징은 가늘고 길쭉한 잎입니다. 잎몸은 선상 피침형 또는 좁은 피침형으로 길쭉하고 끝으로 갈수록 뾰족해집니다. 비교적 질긴 가죽질의 잎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물체는 대체로 8~20cm 정도이며, 잎몸은 보통 10~18cm 정도입니다. 뿌리줄기는 옆으로 길게 기어가며 어린 뿌리줄기에는 갈색 비늘조각이 덮여 있습니다. 화려한 꽃도 없고 커다란 잎도 없지만, 이끼 낀 나무와 바위 사이에서 길쭉한 초록 잎을 내미는 모습은 소박하면서도 독특합니다.

🟤 일엽초 잎 뒤의 갈색 점은 무엇일까요?

일엽초를 발견했다면 잎 뒷면을 한번 살펴보세요. 둥근 갈색 점들이 일정하게 늘어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벌레 알이 붙었나?” 하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벌레 알도 병든 흔적도 아닙니다. 바로 포자낭군입니다. 일엽초는 꽃을 피워 씨앗을 만드는 식물이 아니라 포자로 번식하는 양치식물입니다. 포자를 만드는 작은 포자낭들이 모여 있는 곳을 포자낭군이라고 합니다. 일엽초의 포자낭군은 주로 잎 뒷면의 윗부분에 둥글거나 타원형으로 생깁니다. 포자가 성숙하면서 갈색을 띠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작은 갈색 단추들이 줄지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니 일엽초 잎 뒤에 갈색 점이 있다고 해서 놀라지 마세요. 그 작은 점 안에서 다음 세대를 이어갈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 일엽초는 왜 나무에 붙어 살까요?

일엽초를 관찰하다 보면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흙바닥보다 나무줄기나 이끼 낀 바위에 붙어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일엽초는 대표적인 착생성 양치식물입니다. 그런데 나무에 붙어 산다고 하면 기생식물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착생과 기생은 다릅니다. 기생식물은 숙주 식물로부터 물이나 영양분을 직접 얻어 살아가지만, 착생식물은 다른 식물을 주로 살아갈 공간과 지지대로 이용합니다. 따라서 나무에 붙어 있는 일엽초를 보고 “나무의 영양분을 빼앗아 먹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일엽초에게 오래된 나무껍질과 이끼 낀 바위는 빼앗아 먹을 대상이라기보다 뿌리를 내리고 살아갈 작은 터전에 가깝습니다.

🌏 일엽초는 어디에서 자랄까요?

일엽초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등 동아시아를 비롯해 히말라야 지역과 동남아시아 일부, 하와이 등에 분포합니다. 주로 온대 지역에서 살아가며 나무줄기나 바위 등에 착생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생하는 식물로 국가생물종지식정보시스템에 일엽초, Lepisorus thunbergianus라는 이름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

🌿 일엽초는 겨울에도 살아 있을까요?

일엽초는 상록성 양치식물입니다. 조건이 맞는 곳에서는 겨울에도 초록색 잎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오래된 잎은 시간이 지나면서 갈색으로 변해 떨어지고 새로운 잎으로 교체됩니다. 계절마다 화려한 꽃을 피우지는 않지만 조용히 잎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식물입니다.

🌱 꽃이 없어도 이어지는 일엽초의 삶

우리는 식물을 보면 자연스럽게 꽃부터 찾습니다. “무슨 꽃이 피지?” “꽃은 언제 피지?” 하지만 일엽초 앞에서는 이런 질문이 조금 달라집니다. 일엽초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꽃이 없습니다. 화려한 꽃잎도 없고 꽃이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지도 않습니다. 대신 잎 뒤에 작은 포자낭군을 만들고 그곳에서 만들어진 포자를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집니다. 어쩌면 일엽초의 아름다움은 바로 여기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꽃을 피우지 않아도 식물의 삶은 계속됩니다. 나무껍질 한쪽에 조용히 붙어 있는 작은 일엽초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 일엽초를 만났다면 이것을 관찰해 보세요

숲이나 사찰 주변의 오래된 나무, 습기가 있는 바위에서 일엽초와 비슷한 식물을 발견했다면 바로 지나치지 말고 천천히 살펴보세요. 첫째, 잎이 여러 갈래로 갈라졌는지 살펴봅니다. 일엽초의 잎은 갈라지지 않고 가늘고 길게 뻗습니다. 둘째, 어디에서 자라는지 살펴봅니다. 나무껍질이나 바위 등에 붙어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셋째, 가능하다면 잎 뒷면을 살펴보세요. 둥글둥글한 갈색 포자낭군이 보인다면 일엽초를 비롯한 양치식물의 번식 방법을 직접 관찰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에는 일엽초와 형태가 비슷한 일엽초속 식물도 있기 때문에 잎 하나만 보고 종을 단정하기보다는 잎의 형태와 크기, 뿌리줄기의 비늘, 포자낭군의 배열 등을 함께 관찰하는 것이 좋습니다.

🍃 오늘의 식물 이야기

작은 일엽초 한 포기를 들여다보면 식물의 세계가 꼭 꽃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꽃도 없습니다. 화려한 열매도 없습니다. 그저 오래된 나무와 바위에 조용히 붙어 가느다란 잎을 내밀고, 그 잎 뒤에 수많은 포자를 품습니다. 그래서 숲에서 일엽초를 만난다면 잎의 앞면만 보고 지나치지 마세요. 살며시 잎을 뒤집어 보세요. 그 작은 갈색 점 속에 일엽초가 수많은 세월 동안 살아남아 온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핵심 요약

일엽초 : Lepisorus thunbergianus
분류 : 고란초과 일엽초속
종류 : 상록성 양치식물
특징 : 갈라지지 않은 가늘고 긴 잎
번식 : 꽃과 씨앗이 아닌 포자로 번식
포자낭군 : 잎 뒷면에 둥근 갈색 점처럼 형성
생육 형태 : 주로 나무줄기나 바위 등에 착생
관찰 포인트 : 잎 뒷면의 포자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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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다 보면 논둑이나 개울가처럼 물기가 많은 곳에서 가느다란 꽃대를 늘어뜨린 풀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꽃이 워낙 작아 그냥 지나치기 쉽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작은 꽃들이 하나둘 모여 피어 있습니다. 바로 여뀌입니다. 여뀌는 화려한 꽃을 피우는 식물은 아니지만, 잎에서 매운맛이 나는 독특한 특징을 가진 야생식물입니다. 영어 이름도 이런 특징을 그대로 담아 Water pepper(물후추)​라고 부릅니다.

여뀌

여뀌는 어떤 식물일까?

여뀌의 학명은 Persicaria hydropiper (L.) Delarbre​입니다. 마디풀과(Polygonaceae) 여뀌 속(Persicaria)에 속하는 한해살이풀로, 현재 국제적인 식물 분류 데이터베이스인 Kew의 Plants of the World Online에서도 Persicaria hydropiper를 정명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Polygonum hydropiper라는 학명으로 분류되기도 했습니다. 여뀌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온대 유라시아에서 동남아시아 일부, 호주 등에 걸쳐 넓게 자연 분포합니다. 한국 역시 여뀌의 자생지역에 포함됩니다.

  • 국명 : 여뀌
  • 학명 : Persicaria hydropiper
  • 과명 : 마디풀과
  • 속명 : 여뀌속
  • 생활형 : 한해살이풀
  • 주요 서식지 : 습지, 물가, 논 주변, 도랑 등

여뀌는 어디에서 자랄까?

여뀌를 찾고 싶다면 물이 있는 곳 주변을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여뀌는 습기가 많은 땅을 좋아하기 때문에 개울가와 하천 주변, 습지, 논둑이나 도랑처럼 땅이 축축한 곳에서 자주 발견됩니다. Kew에 수록된 식물학적 자료에서도 여뀌의 생육 환경을 습하거나 물기가 많은 땅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뀌는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물가 주변에서 비교적 쉽게 만날 수 있는 야생식물입니다.

여뀌 잎과 줄기의 특징

여뀌를 자세히 살펴보면 마디풀과 식물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줄기는 곧게 서거나 비스듬히 자라고 가지가 갈라집니다. 특히 줄기의 마디가 뚜렷한 것이 특징입니다. 잎은 대체로 가늘고 긴 피침형이며, 식물상 자료에서는 잎의 크기를 약 길이 3~7cm, 폭 0.8~1.5cm 정도로 설명합니다. 마디 주변을 자세히 관찰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줄기와 잎이 만나는 부분에는 줄기를 둘러싸는 막 같은 구조가 있는데 이를 탁엽초(托葉鞘, ochrea)​라고 합니다. 탁엽초는 마디풀과 식물을 관찰하고 구별할 때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뀌 꽃은 어떻게 생겼을까?

여뀌 꽃은 크고 화려하지 않습니다. 작은 꽃들이 가늘고 긴 이삭 모양의 꽃차례에 드문드문 달리며 꽃차례가 아래쪽으로 다소 처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꽃덮이 조각은 대체로 녹색이나 붉은빛을 띠며 매우 작습니다. 그래서 멀리서 보면 꽃이 피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관찰하면 작은 꽃들이 가느다란 꽃대에 이어져 있는 여뀌만의 소박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뀌가 특별한 이유, 잎에서 매운맛이 난다

여뀌를 기억하는 가장 재미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매운맛이 나는 풀’​이라고 기억하는 것입니다. 여뀌의 종소명인 hydropiper에서도 이러한 특징을 엿볼 수 있습니다. ‘hydro’는 물을, ‘piper’는 후추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영어에서도 여뀌를 Water pepper라고 부릅니다. 실제로 여뀌는 자극적이고 매운맛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런 특징 때문에 다른 평범한 풀과는 색다른 식물로 기억됩니다. Kew에서도 이 식물이 식용이나 전통적 약용 등으로 이용되어 온 기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만 야생에는 여뀌와 비슷하게 생긴 식물이 많습니다. 식물을 정확하게 구별하지 않은 상태에서 직접 잎을 먹어보거나 맛을 보는 방법으로 확인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여뀌 열매는 어떻게 생겼을까?

작은 꽃이 지고 나면 열매가 만들어집니다. 여뀌의 열매는 약 2.5~3.5mm 정도로 작고, 렌즈 모양 또는 세모진 형태를 나타냅니다. 성숙하면 어두운 갈색이나 검은색을 띱니다. 화려한 꽃이나 큰 열매를 만드는 대신 작은 꽃과 열매를 통해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것이 여뀌의 생존 방식입니다.

여뀌와 여뀌 종류는 같은 말일까?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이름에 ‘여뀌’가 붙거나 여뀌와 비슷하게 생긴 식물이 여러 종류 있습니다. 여뀌 속(Persicaria) 자체가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하는 식물군이기 때문에 단순히 잎이나 꽃 모양만 보고 모든 식물을 여뀌(Persicaria hydropiper)라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야외에서 식물을 구별하려면 잎의 모양 → 줄기의 마디 → 탁엽초 → 꽃차례 → 꽃과 열매 → 자라는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여뀌는 흔하지만 재미있는 식물이다

여뀌는 장미나 백합처럼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끄는 꽃은 아닙니다. 오히려 논둑이나 물가에서 다른 풀들과 섞여 자라기 때문에 이름조차 모르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상당히 재미있는 식물입니다. 물기가 많은 곳에서 살아가고, 가느다란 잎을 만들며, 아주 작은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잎에서 후추처럼 자극적인 맛이 난다는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뀌의 학명과 영어 이름에도 물과 후추라는 특징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물가에서 자라는 매운 풀.’ 이 한 문장만 기억해도 여뀌라는 식물을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다음에 논둑이나 개울가를 걷다가 작은 꽃을 달고 있는 풀이 보인다면 그냥 지나치지 말고 한번 자세히 살펴보세요. 평범하게 보이던 풀 한 포기에도 자신만의 이름과 살아가는 방식이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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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을 불교에서는 무엇이라고 불렀을까요? 불교의 오래된 세계관에서는 수미산(須彌山)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네 개의 큰 세계가 존재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를 사대주(四大洲)라고 합니다. 그 네 세계가 바로 염부제, 구야니, 불우체, 울단월입니다.

경전을 읽다 보면 낯선 이름 때문에 어렵게 느껴지지만, 하나씩 살펴보면 고대 불교인들이 인간과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장유사 아미타불

불교의 사대주(四大洲)란?

불교 우주관에서는 세계의 중심에 거대한 수미산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네 개의 대륙이 자리한다고 설명합니다. 오늘날 흔히 사용하는 명칭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방향 옛 경전의 명칭 널리 쓰이는 명칭 특징
남쪽 염부제(閻浮提) 남섬부주(南贍部洲) 우리가 사는 인간세계
서쪽 구야니(瞿耶尼) 서우화주(西牛貨洲) 반달과 같은 형태
동쪽 불우체(弗于逮) 동승신주(東勝身洲) 둥근 형태로 묘사
북쪽 울단월(鬱單越) 북구로주(北俱盧洲) 네모난 형태, 장수하는 세계

흥미로운 것은 단순히 대륙의 위치만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국토의 형태와 사람의 얼굴, 키와 수명까지 서로 연관시켜 설명합니다.

1. 염부제,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

염부제(閻浮提)는 수미산 남쪽에 있다고 여겨지는 세계입니다. 그래서 남염부제 또는 남섬부주라고도 합니다. 사진 속 자료에서는 염부제의 국토를 남쪽은 좁고 북쪽은 넓으며, 사람의 얼굴 역시 그와 비슷한 형태라고 설명합니다. 사람의 수명은 100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교에서 특히 중요한 곳이 바로 이 염부제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세계를 염부제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불교 문헌에서 말하는 '염부제 중생'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인간세계의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구야니, 반달 모양의 세계

수미산 서쪽에는 구야니(瞿耶尼)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일반적으로 서우화주라고 부르는 세계입니다. 자료에서는 국토의 모습이 반달과 같고, 그곳 사람의 얼굴 역시 국토의 모양을 닮았다고 설명합니다. 수명은 200세로, 염부제 사람보다 오래 사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여기에서 당시의 독특한 세계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대 불교 우주론에서는 사람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를 서로 분리해서 바라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3. 불우체, 둥근 세계

수미산 동쪽에는 불우체(弗于逮)가 있습니다. 후대에 널리 알려진 명칭으로는 동승신주에 해당합니다. 자료에서는 불우체의 국토가 둥글며 사람들의 얼굴 역시 둥글다고 설명합니다. 수명은 300세라고 합니다. 염부제 100세, 구야니 200세, 불우체 300세로 이어지는 차이도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숫자는 현대의 생물학적 평균수명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불교 우주론 속 각각의 세계가 서로 다른 조건을 지닌다는 것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설명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4. 울단월, 천 년을 산다는 북쪽 세계

수미산 북쪽에는 울단월(鬱單越)이 있다고 합니다. 흔히 북구로주라고 부릅니다. 사진 속 자료에서는 울단월의 국토가 네모반듯하고 사람들의 얼굴도 그 지형을 따라 네모나다고 설명합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수명입니다. 수명이 1,000세이며 증감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불교 우주론에서 북구로주는 물질적인 생활 조건이 매우 풍족하고 사람들이 장수하는 곳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불교에서는 단순히 오래 살고 풍족한 세계가 가장 좋은 수행의 세계라고만 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사는 염부제가 중요할까?

여기서 사대주 이야기가 단순한 옛날 지리 이야기를 넘어섭니다. 염부제의 인간은 다른 세계에 비해 수명이 짧고 삶에는 고통과 변화가 많다고 설명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조건 때문에 삶의 무상함을 깨닫고 수행할 가능성도 크다는 불교적 관점으로 이어집니다. 삶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지금의 삶을 돌아보게 되고, 괴로움을 경험하기에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것 자체를 귀중한 기회로 바라보는 가르침과도 연결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사대주는 실제 지리일까?

여기서는 한 가지를 분명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염부제·구야니·불우체·울단월의 형태와 사람의 수명에 관한 설명은 현대 지리학이나 과학적 사실을 설명한 것이 아닙니다. 고대 인도에서 형성되고 불교 문헌 속에서 발전한 전통적인 불교 우주관입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아시아·유럽·아프리카 같은 실제 대륙과 일대일로 대응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옛사람들이 이 우주론을 통해 “인간은 어떤 세계에 살고 있으며,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어떻게 이해했느냐에 있습니다.

염부제에서 살아간다는 것

사대주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남쪽의 염부제, 즉 남섬부주라고 설명됩니다. 염부제의 삶은 짧습니다. 태어나고 늙고 병들며 결국 죽음을 맞습니다. 좋은 일만 계속되지도 않고 괴로운 일만 계속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불교는 바로 그 변화하는 삶 속에서 깨달음의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어쩌면 사대주 이야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저 세계가 정말 어디에 있을까?'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수명이 정해져 있는 염부제의 인간으로 태어난 나는, 지금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오래된 불교의 우주 이야기는 결국 다시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삶으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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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불모산 깊은 곳에는 가야불교의 오래된 이야기를 품은 장유사(長遊寺)​가 있습니다. 장유사는 허황옥 왕후와 함께 가락국에 왔다고 전해지는 장유화상과 깊은 인연을 지닌 사찰입니다. 이곳에는 서기 48년 창건설부터 장유화상 사리탑, 허황옥과 왕후사에 이르기까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유사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전해오는 이야기와 역사적으로 확인된 사실은 구분해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해 장유사에는 어떤 역사가 숨어 있을까요?

장유사 대웅전

김해 불모산 장유사

장유사는 경상남도 김해시 불모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사찰로, 제14교구 본사인 범어사의 말사입니다. 장유사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사찰의 규모나 건물의 오래됨보다 이곳에 전해지는 가락국과 가야불교의 기억입니다. 장유사에는 허황옥 왕후, 김수로왕 그리고 장유화상으로 이어지는 가야의 불교 전승이 남아 있습니다. 특히 장유화상이 서기 48년 가락국으로 건너와 장유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장유화상은 누구일까?

장유사의 창건자로 전해지는 인물이 장유화상(長遊和尙)​입니다. 사찰에 전해지는 기록에서는 장유화상을 인도 아유타국의 태자이자 승려로 설명합니다. 허황옥 왕후가 김수로왕과 혼인하기 위해 가락국으로 올 때 장유화상도 함께 왔으며, 이후 불모산에 머물며 수행하고 장유사를 창건했다고 전합니다. 그 시기가 바로 서기 48년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이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가야 지역에는 고구려의 공식적인 불교 전래인 372년보다 약 300년이나 먼저 불교가 들어온 셈입니다. 그래서 장유사는 오랫동안 가야불교와 불교 남방전래설을 이야기할 때 중요한 사찰로 언급되어 왔습니다.

 

장유사는 정말 서기 48년에 세워졌을까?

여기서부터는 조금 신중하게 살펴봐야 합니다. ‘서기 48년 장유화상이 장유사를 창건했다’는 이야기는 장유사에 전해지는 창건 전승입니다. 현재까지 이를 1세기의 역사적 사실로 확정할 수 있는 충분한 고고학적 근거가 확인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삼국유사』에 전하는 가락국 관련 기록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등장합니다. 수로왕과 허황옥이 살았던 당시에는 아직 이 지역에 절을 세우고 불법을 받드는 일이 없었으며, 제8대 질지왕 때인 452년에 이르러 사찰이 세워졌다고 전합니다. 따라서 장유사를 소개하면서 ‘서기 48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서기 48년 장유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 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보다 정확합니다.

허황옥과 가야불교

장유사 이야기에 빠질 수 없는 사람이 허황옥 왕후입니다.『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바다를 건너와 김수로왕과 혼인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허황옥이 실제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아유타국이 오늘날 정확히 어디에 해당하는지를 두고는 여러 견해가 존재합니다. 그럼에도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이유는 고대 가야가 바다를 통해 외부 세계와 교류했던 역사적 배경과 맞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허황옥 전승에 장유화상이 결합하면서 인도-허황옥-장유화상-가락국-불교로 이어지는 독특한 가야불교 이야기가 형성되었습니다.

452년에 세워졌다는 왕후사

가야불교를 살펴볼 때 장유사와 함께 주목해야 할 사찰이 왕후사(王后寺)​입니다. 왕후사는 현재 남아 있지 않지만 『삼국유사』 등에 관련 기록이 전합니다. 가락국 제8대 질지왕이 452년 시조모인 허황옥 왕후의 명복을 빌기 위해 수로왕과 허황옥이 혼인했던 곳에 왕후사를 세웠다고 합니다. 왕후사는 이후 장유사가 인근에 들어서면서 폐사되었다고 전합니다. 다만 왕후사가 정확히 어디에 있었는지를 놓고는 여러 견해가 있기 때문에 현재 장유사 주변의 특정 장소를 확정적으로 왕후사지라고 말하는 데에는 주의가 필요합니다.

장유사에서 꼭 봐야 할 장유화상 사리탑

장유사를 방문한다면 꼭 살펴봐야 할 문화유산이 있습니다. 바로 김해 장유화상 사리탑입니다. 장유화상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전해지는 승탑으로, 장유사의 오랜 역사와 장유화상 신앙을 상징하는 문화유산입니다. 전승에서는 가락국 제8대 질지왕이 장유화상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도 역사와 전승의 차이가 있습니다. 사리탑은 5세기에 만들어졌다고 전해지지만 현재 남아 있는 탑의 형태와 제작 수법을 살펴보면 고려 말이나 조선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따라서 사리탑 역시 ‘가락국 시대부터 내려온 전승’과 ‘현재 남아 있는 석조물의 제작 시기’를 구분해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장유화상이 수행했다는 토굴

장유사에서 오른쪽으로 약 60m 아래에는 장유화상이 처음 수행했다고 전해지는 토굴이 있습니다. 골짜기 끝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공간을 마련한 형태인데, 이 축대 역시 허황옥과 함께 온 아유타국 사람들이 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물론 이것 역시 1세기 유적임이 고고학적으로 확인됐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장유화상의 수행을 기억하고 기리는 장소로 이어져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가야에는 정말 불교가 먼저 들어왔을까?

장유사를 둘러싼 가장 흥미로운 질문은 결국 이것입니다. “가야에는 정말 고구려보다 먼저 불교가 들어왔을까?” 한국 불교사에서는 일반적으로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372년을 공식적인 불교 전래의 중요한 시점으로 봅니다. 반면 장유사 전승에서는 장유화상이 서기 48년에 가락국에 들어와 불교를 전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두 시기에는 300년이 넘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 때문에 가야에는 중국 대륙을 거치는 북방 경로와 별개로 바다를 통한 남방 불교문화의 유입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제기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장유화상의 1세기 가락국 도래와 장유사 창건을 입증할 결정적인 자료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확정된 역사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가야불교를 공부할 때는 ‘가능성’과 ‘전승’을 ‘확정된 역사’로 바꾸어 말하지 않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장유사가 중요한 이유

그렇다고 장유사의 가치가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장유사는 아주 흥미로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장소입니다. 가야 사람들은 무엇을 믿었을까? 바다를 통해 가야로 들어온 사람들은 어떤 문화를 가지고 왔을까? 허황옥 이야기에 왜 불교 전승이 결합되었을까? 장유화상이라는 인물은 언제부터 가야불교의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기 시작했을까? 이러한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장유사는 단순히 산속에 자리한 사찰 하나가 아니라 가야의 역사와 불교, 설화와 지역의 기억이 만나는 공간​으로 다가옵니다.

김해 장유사를 걸으며

사찰은 건물만 보는 곳이 아닙니다. 때로는 그 땅에 오랫동안 쌓여온 사람들의 기억을 읽는 곳이기도 합니다. 장유사에는 장유화상이 수행했다는 이야기가 있고, 허황옥 왕후의 이야기가 있으며, 가야에 불교가 언제 들어왔는지를 둘러싼 오래된 물음이 남아 있습니다. 어디까지가 역사이고 어디서부터 전설일까요? 그 경계를 찾아가는 것 또한 장유사를 답사하는 즐거움일 것입니다. 김해 불모산 장유사.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절인가’를 따지는 것보다 가야 사람들은 불교를 어떻게 만나고, 후대 사람들은 그 만남을 어떻게 기억해 왔는가​를 생각하며 걸어볼 때 더욱 특별해지는 사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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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산길을 걷다 보면 초록빛 풀숲 위로 작은 노란 꽃들이 구름처럼 피어 있는 모습을 만날 수 있습니다. 바로 마타리입니다. 마타리는 화려한 꽃 한 송이로 시선을 끄는 식물은 아닙니다. 대신 아주 작은 노란 꽃들이 수없이 모여 피면서 늦여름과 초가을 들판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우리 산과 들에서 만날 수 있는 야생화 마타리의 꽃말과 개화시기, 특징, 자생지와 생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마타리

마타리는 어떤 식물일까요?

마타리의 학명은 Patrinia scabiosifolia Link입니다. 현재 국제적인 식물 분류체계에서는 인동과(Caprifoliaceae) 마타리속(Patrinia)​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분류됩니다. 예전 분류에서는 마타리과(Valerianaceae)로 다루기도 했기 때문에 오래된 식물도감에서는 과 이름이 다르게 나올 수 있습니다. 마타리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국, 일본, 몽골, 러시아 극동지역 등 동아시아의 넓은 지역에 자연적으로 분포합니다. 국제 식물 데이터베이스인 영국 왕립식물원 Kew의 Plants of the World Online에서도 한국을 마타리의 자생 분포지역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해살이풀이 아니라 여러해살이풀이라 겨울이면 지상부가 쇠퇴하지만 땅속 부분은 살아남아 이듬해 다시 싹을 틔웁니다.

마타리꽃은 언제 필까요?

마타리의 개화시기는 대체로 7월부터 9월 무렵입니다. 한여름부터 꽃이 피기 시작해 늦여름과 초가을까지 노란 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타리꽃 하나하나는 매우 작습니다. 하지만 줄기 윗부분에서 가지가 갈라지고 그 끝에 수많은 작은 꽃이 모여 피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하나의 커다란 노란 꽃다발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마타리는 가까이에서 보는 모습과 멀리서 보는 모습의 느낌이 상당히 다른 야생화입니다. 가까이에서는 작은 꽃들의 섬세함이 보이고, 멀리에서는 노란 꽃무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이 눈에 들어옵니다.

마타리 잎의 특징

마타리를 구별할 때 꽃과 함께 살펴보면 좋은 것이 입니다. 줄기의 잎은 마주나며, 특히 아래쪽과 중간 부분의 잎은 깃털처럼 깊게 갈라지는 특징을 보입니다. 줄기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잎은 상대적으로 작아집니다. 따라서 산이나 들에서 마타리로 보이는 식물을 발견했다면 단순히 노란 꽃만 보는 것보다, 노란색의 작은 꽃이 무리지어 피는지, 줄기가 곧게 자라는지, 잎이 마주나는지, 잎이 깊게 갈라져 있는지 함께 관찰하는 것이 좋습니다.

마타리는 어디에서 자랄까요?

마타리는 햇빛이 비교적 잘 드는 산과 들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산기슭이나 풀밭, 숲 가장자리처럼 완전히 그늘진 곳보다는 비교적 햇빛이 들어오는 열린 환경에서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타리의 키는 주변 환경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m 안팎으로 훌쩍 자라기도 합니다. 줄기가 길게 올라와 윗부분에서 가지를 치고 그 끝에 노란 꽃이 모여 피기 때문에 다른 풀 사이에서도 비교적 눈에 잘 띕니다.

마타리와 뚝갈은 어떻게 다를까요?

마타리와 함께 알아두면 좋은 우리 야생화가 뚝갈입니다. 뚝갈 역시 마타리속 식물이어서 전체적인 생김새가 비슷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쉽게 눈에 띄는 차이 가운데 하나는 꽃의 색깔입니다. 마타리는 노란색 꽃을 피우는 반면 뚝갈은 흰색 계열의 꽃을 피웁니다.

다만 야생식물은 꽃 색깔 하나만으로 종을 판단하기보다는 잎의 형태와 꽃차례, 열매 등의 특징까지 함께 관찰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마타리라는 이름과 독특한 냄새

마타리는 뿌리와 식물체에서 특유의 냄새가 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마타리속 식물은 동아시아에서 전통적으로 이용되어 왔으며 중국의 생약에서 등장하는 '패장(敗醬)'이라는 이름도 특유의 냄새와 관련해 설명되곤 합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약용 기록이 있다고 해서 야생의 마타리를 직접 채취해 임의로 섭취하거나 약으로 이용하는 것은 주의해야 합니다. 마타리속에는 서로 닮은 식물이 있고 전통적인 이용과 현대 의학에서 확인된 치료 효과는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지만 함께 피어 아름다운 마타리

마타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꽃의 매력은 '한 송이'보다 '함께 피어나는 모습'​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꽃 하나만 보면 작고 소박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작은 꽃이 가지 끝에 모여 피면 어느새 커다란 노란 꽃무리가 됩니다. 여름의 짙은 초록빛 사이에서 흔들리는 마타리를 보고 있으면 계절이 조금씩 가을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느낄 수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함께 피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어쩌면 그것이 늦여름 들판에서 마타리가 보여주는 풍경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산길에서 노란 꽃들이 무리지어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면 잠시 걸음을 멈춰보세요. 늦여름과 초가을 사이, 작은 노란 꽃을 가득 피운 마타리를 만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마타리 핵심정보

  • 이름 : 마타리
  • 학명 : Patrinia scabiosifolia Link
  • 분류 : 인동과 마타리속
  • 생육형 : 여러해살이풀
  • 꽃색 : 노란색
  • 개화시기 : 주로 7~9월
  • 특징 : 작은 노란 꽃이 가지 끝에 많이 모여 핌
  • 잎 : 마주나며 깃털처럼 깊게 갈라지는 경우가 많음
  • 분포 :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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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왜 나무?”

처음 ‘아왜나무’라는 이름을 들으면 한 번쯤 되묻게 됩니다. 이름만 보면 우리말 같지만, 아왜나무는 실제로 존재하는 식물입니다. 사계절 반짝이는 초록 잎을 달고 있으며 초여름에는 작은 흰 꽃이 무리 지어 피고, 가을에는 붉은 열매가 점차 검게 익어가는 아름다운 나무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제주도와 남해안의 따뜻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난대성 상록활엽수입니다.

아왜나무

아왜나무 기본정보

  • 국명 : 아왜나무
  • 분류 : 산분꽃나무과 산분꽃나무속
  • 학명 : Viburnum odoratissimum var. awabuki
  • 다른 분류의 학명 : Viburnum awabuki
  • 형태 : 상록활엽 관목 또는 작은 키나무
  • 개화시기 : 주로 6~7월
  • 꽃색 : 흰색 또는 연한 홍색
  • 결실시기 : 주로 가을
  • 열매색 : 붉은색에서 검은색으로 변화
  • 국내 분포 : 제주도와 남해안 도서지역 등

아왜나무의 학명은 자료에 따라 조금 다르게 나타납니다. 우리나라 국가표준식물목록에서는 Viburnum odoratissimum var. awabuki를 사용하고 있지만, 영국 왕립식물원 Kew의 Plants of the World Online에서는 Viburnum awabuki를 독립된 종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 학명 가운데 하나가 단순히 틀렸다기보다는 식물분류 체계에 따른 차이로 이해하면 됩니다.

아왜나무의 가장 큰 특징은 반짝이는 잎

아왜나무를 처음 만났다면 가장 먼저 을 살펴보세요. 잎은 일 년 내내 푸른 상록성이며 가지에서 서로 마주 보고 달립니다. 특히 잎이 두껍고 단단한 가죽질이며 표면에서 강한 광택이 납니다. 햇빛을 받으면 짙은 초록색 잎이 반짝여 멀리서도 싱그러운 느낌을 줍니다. 아왜나무를 쉽게 기억하려면 ‘크고 두꺼우며 반짝이는 초록 잎’이라고 기억하면 좋습니다.

초여름에는 하얀 꽃이 무리 지어 핀다

아왜나무는 주로 6~7월에 꽃을 피웁니다. 꽃 하나만 보면 작지만 수많은 꽃이 가지 끝에 모여 피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하나의 커다란 하얀 꽃다발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꽃차례를 식물학에서는 원추꽃차례라고 합니다. 꽃은 주로 흰색이며 연한 홍색을 띠는 경우도 있습니다. 향기가 있어 꽃이 피는 계절에는 벌과 같은 곤충들이 찾아옵니다. 아왜나무는 실제로 밀원식물로 이용할 가치가 있는 나무로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붉은 열매가 검게 변한다고?

아왜나무의 또 다른 볼거리는 열매입니다. 꽃이 진 자리에는 작은 열매가 달리고 가을이 되면서 열매가 성숙합니다. 처음에는 녹색이었던 열매가 익으면서 녹색 → 붉은색 → 검붉은색 → 검은색 방향으로 변합니다. 열매가 한꺼번에 같은 속도로 익지 않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 한 나무에서 붉은 열매와 어두운 열매를 함께 볼 수도 있습니다. 반짝이는 초록 잎 사이에 붉은 열매가 달린 모습은 아왜나무의 아름다운 볼거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아왜나무는 어디에서 자랄까?

아왜나무는 추운 곳보다는 따뜻한 지역을 좋아하는 난대성 식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를 비롯하여 남해안의 여러 섬 지역에서 자연적으로 자랍니다. 따라서 아왜나무를 기억할 때는 제주도 · 남해안 · 난대림 · 상록활엽수 이 네 가지 키워드를 함께 기억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과 대만 등 동아시아의 따뜻한 지역에도 분포합니다.

이름은 왜 ‘아왜나무’일까?

아왜나무라는 이름은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습니다. “아, 왜 나무?” 마치 누군가 질문하는 것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왜 나무일까?’라는 뜻에서 붙은 우리말 이름은 아닙니다. 아왜나무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사용되던 ‘아와부키(awabuki)’​라는 식물 이름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 학명에도 ‘awabuki’라는 단어가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이름의 세부적인 변천 과정에 대해서는 자료에 따라 설명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특정 유래 하나만을 확정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일본 식물명과 관련되어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아왜나무가 방화수로 이용된다고?

아왜나무의 특징 가운데 흥미로운 것이 있습니다. 바로 방화수(防火樹)​로 이용된다는 점입니다. 아왜나무는 두껍고 수분을 많이 함유한 상록성 잎을 가지고 있어 방화 목적의 수종으로 활용되어 왔습니다. 이 때문에 인터넷에서는 가끔 “불이 나면 아왜나무가 거품을 내서 불을 끈다.”라는 이야기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왜나무가 소화기처럼 스스로 불을 끈다고 이해하면 지나친 표현입니다.

정확하게는 수분이 많은 상록성 수목의 특성 때문에 불의 확산을 줄이는 방화용 수종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방풍수와 생울타리로도 활용되는 아왜나무

아왜나무는 방화수뿐 아니라 여러 용도로 활용됩니다. 대표적으로 방화수 · 방풍수 · 생울타리 · 밀원식물 · 조경수 등으로 이용됩니다. 겨울에도 잎이 떨어지지 않고 잎이 크고 촘촘하게 자라기 때문에 바람을 막거나 시선을 가리는 생울타리로 이용하기 좋습니다. 또한 두껍고 윤기 나는 잎 자체가 아름다워 공원이나 정원 등에 심는 조경수로도 가치가 있습니다.

아왜나무 쉽게 구별하는 방법

산책하다 아왜나무로 보이는 나무를 발견했다면 네 가지를 확인해 보세요. 첫째, 겨울에도 초록색 잎을 달고 있는가? 둘째, 잎이 크고 두꺼우며 표면이 반짝이는가? 셋째, 초여름에 작은 흰 꽃들이 가지 끝에 무리 지어 피는가? 넷째, 가을에 붉은 열매가 달리고 점차 검게 익는가? 이러한 특징이 함께 나타난다면 아왜나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다만 식물의 정확한 동정은 잎 하나만으로 판단하기보다는 잎의 배열과 모양, 꽃, 열매, 수피와 전체 수형 등을 함께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름보다 더 재미있는 나무, 아왜나무

처음에는 이름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아왜나무에는 흥미로운 특징이 많습니다. 사계절 푸른 잎을 유지하고, 초여름이면 작은 흰 꽃을 풍성하게 피웁니다. 가을에는 붉은 열매가 검게 익어가며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또한 제주도와 남해안의 난대림에서 자라는 식물이면서 방화수와 방풍수, 생울타리, 밀원식물 등으로도 활용되는 유용한 나무입니다. ‘아, 왜 나무?’ 재미있는 이름 때문에 한번 돌아보고, 반짝이는 잎 때문에 다시 한번 바라보게 되는 나무. 다음에 제주도나 남해안의 숲과 공원에서 크고 두꺼운 초록 잎이 유난히 반짝이는 상록수를 만난다면 아왜나무인지 한번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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