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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뇌가 있고 번뇌로 인한 고통을 겪으며 살아가는 이들을 중생이라 한다. 약한 번뇌는 우리를 느슨하게 얽어 매고, 강한 번뇌는 단단하게 결박하며, 더 심한 번뇌는 우리를 죽인다. 번뇌는 중독성이 있다. 가장 중독성이 강한 번뇌를 삼독 즉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 한다.

 

독성을 처음 가까이할 때는 즐거움을 주나, 중독이 심해진 뒤에는 본능이라 불리며 벗어날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한다. 처음에 가까이 하면 즐거움을 주지만, 나중에는 벗어나려면 고통을 준다. 번뇌에 오염된 정도에 따라 고통도 커진다. 이 번뇌는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어 작동하는 것일까.

명상

숫타니파타 수칠로마 야차에서,

야차가 묻고 부처님이 답하시는 내용이 있다.

 

 

"탐욕과 혐오는 어디에서 생기는 것입니까.

좋고 싫은 것, 소름 끼치는 일은 어디에서 생기는 것입니까.

또 온갖 망상은 어디에서 일어나 우리를 방심케 합니까.

마치 어린아이들이 잡았던 까마귀를 놓쳐버리는 것처럼."

 

"탐욕과 혐오는 자신에게서 생긴다.

좋고 싫은 것과 소름 끼치는 일도 자신으로부터 생긴다.

온갖 망상도 자신에게서 생겨 방심케 된다.

마치 어린아이들이 잡았던 까마귀를 놓쳐버리는 것처럼."

 

 

경전에서 '자신'이라고 말한 것은, 불교 전문용어로는 유신견有身見이 될 것이다. 유신견은 근본번뇌 6가지 중 악견에 속한다. 약견에는 다시 유신견·변견 ·견취견 ·계금취견 ·사견 5가지가 있다. 유신견은 모든 번뇌의 근본이고 근본 번뇌의 근본이 된다. 유신견을 의지해 여러 가지 악견과 탐진치(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 번뇌가 발생한다. 유신견에 집착하는 정도에 따라 번뇌도 강해진다.

 

유신견은 몸이 있다는 견해, 즉 아我가 있다는 확실한 느낌, 즉 유아견이라 말해도 된다. 유신견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현상이 일어난다. 자기의 존재가 너무나 확실해 의심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어떤 존재로 받아들이는가. 자기는 '항상 머무는 존재'이고 '하나인 존재'로서 느끼고 확신한다.

 

또 그 아我를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든다.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자기는 '자유로운 존재'이고 '자유로운 존재이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또 자가가 모든 질서의 중심, 관계의 중심, 관심의 중심이고,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또 자기가 더 옳고 정확하다는 확신을 갖게 한다. 이것은 의식적인 생각이나 행동이 아니다.

 

잠재의식 무의식에서 지속적으로 주장하고 갈망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강박이 되고 집착이 된다. '나의 존재'를 확신하는 자는, 모두 자동적으로 이런 강박을 갖게 되고, 이런 것에 집착을 하게 된다. 나의 존재를 확신하고, 나를 위주로 나만을 위해 생각하고 행동하게 된다. 이와 같은 생각과 행동이 당연하다고 본다. 나의 존재가 다른 존재보다 더 중요하고 더 가치가 있다. 더 사랑스럽고 더 소중하다.

 

더 중요하고 가치가 있으며 사랑스럽고 소중한 나는 누구보다 특별한 존재로 인식한다. 그러므로 더 좋은 것은 나에게 당연히 주어야 하고, 나를 거스르는 것은 당연히 악한 것이며, 나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당연히 선한 것이라 생각한다. 자기가 너무도 중요한 나머지, 다른 존재는 자기를 위하거나 돋보이게 하는 이용 대상으로 여기게 된다. 자기도 자각하지 못한 상태에서 말이다. 나라는 존재에서 이와 같은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음이다.

 

자기에게 당연한 이 확신을 다른 사람이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편으로 답답하고 억울하다. 물론 다른 사람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똑같이 답답해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존재가 나에게 답답해하는 것은, 잘 보이지도 않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심지어 불쾌하기까지 한다. 그냥 자연스러운 내로남불이다.

 

이와 같은 생각이 타인 혹은 다른 존재와 갈등하고 대립하게 만든다. 개인 간에도 작동하고 단체 사이에도 작동하며 국가 간에도 작동한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게 처리하기 위해, 아상을 더 강하게 사용할수록 더 강한 악업을 짓게 된다. 아상을 강화해 문제를 해결하려 할수록 문제가 더 커지고 강화된다.

 

그 결과 고통도 더 커진다. 마치 두 사람이 목소리를 점점 더 높여가며 싸울수록, 점점 더 목도 상하고 관계도 상해 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일체의 번뇌가 자신 즉 유신견을 기반으로 발생하고 있다. 

 

불법에는 대소승을 막론하고 '나의 존재'라는 생각을 벗어나기 위해서, 오온을 깊게 관찰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오온을 하나하나 자세히 관찰하다 보면, 유신견은 존재에 대한 착각이고 인류가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자기 망상임을, 경전에서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다. 이 공통된 착각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고통과 불행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각자 자기의 아我에 집착하고 행동하기를 그치지 않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인무아人無我와 법무아法無我를 바탕으로 한 반야지혜를 개발하고, 그 지혜를 의지해 일체 고해를 건너 피안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유신견을 끊으면 인무아를 얻는다. 그렇다고 당장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마치 나무의 뿌리를 잘라내도 나무 잎이 그 순간에 말라죽는 것은 아니라, 시간이 더 지나야 그 나무가 자연히 말라죽게 되는 것과 같다.

 

마찬가지로 유신견이 없어지고 정견을 얻어 수다원이 되어도, 7번 욕계를 왕래하며 생사를 거친 뒤, 삼계를 벗어나 열반에 들게 된다. 유신견은 제일 먼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근본 번뇌다. 이 관문을 원만히 통과하고 수행해야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축산보림. 2024.01_도암스님(통도사 율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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