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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서는 태어남은 타파해야 할 숙명이다. 생로병사(生老炳死: 태어남, 늙어감, 병듦, 죽음) 일련의 과정이 모두 '고苦'이다. 고성제. '고'라는 ' 팩트(사실), '고'라는 '진리'이다. 유명한 티베트승 감뽀빠의 《해탈장엄론》에는 태어나는 과정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고통이 동반하는지 상세히 기술되었다. "아이가 수태된 첫 주, 신체 기관과 의식의 혼합물인 태아는 뜨거운 솥에서 요리되고 튀겨지는 듯 상상도 못 한 고통을 겪는다. (중략) 자궁 안에 바람이 일어나 태아에 닿으면 두 팔과 두 다리가 나타나는데, 이때 장사가 사지를 잡아당기고 매로 때리는 듯 큰 고통이 일어난다.

 

붓다의 '다시 안 태어나는 법'

탄생은 우리가 끊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인 것이다. 자꾸만 다시 태어나는 윤회를 끊는 것, '고'라는 진리의 궁극적 소멸! 이것이 우리 수행의 목표이다. 결국 '다시 안 태어나는 법'을 가르쳐준 위대한 분이 석가모니 부처님이시겠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덩어리를 타파해 버리는 놀라운 방법. 스스로가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버리는 비상한 방법. 그 내용은 사성제와 팔정도이고, 실참법은 '계戒 - 정定 - 혜慧'이다. 

그림1. <육도윤회 원판>, 《화엄경》 권제37변상도, 감지금니, 고려 14세기 중엽, 호림박물관 소장

자꾸만 생生을 받게 되는 원인, 다시 태어나는 근간의 비밀을 밝힌 분이 석가모니이시다. "수많은 태어남, 그 윤회 속을 헤매왔네./ 집을 짓는 자는 누구인가(중략) / 아! 집을 짓는 자여! 마침내 너를 찾았다. 너는 이제 다시는 집을 짓지 못하리라. 모든 서까래는 부서졌고, 대들보는 산산조각 났다. / 나는 열반에 이르렀고, 모든 갈애는 사라졌다. "《법구경》에 나오는 석가모니 붓다의 오도송이다.

그림 2. '생로병사'의 삶의 과정, 그리고 죽은 후 다시 태어나는 모습이 묘사되었다. 항아리 같은 것이 무수히 둘러 있는데, 이는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의 터널이다. (그림 1의 부분)

자꾸만 '집을 짓는 자'가 있다. 여기서 '집'이란 몸 받아 태어남(生)을 말한다. 집 짓는 자를 찾으면, 집을 못 짓게 할 수 있다. '집 짓는 자가 누구인지 알려고/ 찾아 헤매다 헤매다 찾지 못했네/ 거듭거듭 태어남은 괴로움이다. "그러다가 석가모니는 결국 '집 짓는 자'를 찾게 되고, 그 기쁨에 위아 같은 오도송을 터트린다.

 

'집 짓는 자'는 바로 '12 연기'였다. 집의 근간이 되는 대들보는 '무명無明'이었고, 대들보에 연결되는 서까래들은 무명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식識 · 명색名色 · 처處 · 촉觸 · 수受 등이었다. 수受를 바탕으로 갈애(愛)와 취착(取)이 생기더니, 태어남(生)으로 연결된다. 그리고 태어남에 따른 노老 · 병病 · 사死가 속절없이 진행된다.

그림 3. 한가운데의 부처님 아래로 지옥, 축생, 아귀 등 육도윤회의 세상이 펼쳐진다.(그림 1의 부분)

노병사에는 슬픔 ·비애 ·통곡 ·절망이 동반된다. 승려연수교육에서 "우리는 왜 죽을까요?"라는 질문을 했더니, 바로 "태어났으니까요."라는 정답이 나왔다. 그러면 "왜 태어났을까요?"라는 질문의 해답을 찾은 분이 석가모니이시고, 그 해답은 12 연기이다. 바로 석가모니 부처님이 북인도 우르벨라(지금의 보드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은 내용이다.

 

'윤회의 터널'을 지나, 재생되는 모습

고려시대 화엄경 변상도(變相圖) 중에 현재 우리가 윤회하고 있는 모습을 여실하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그림 1) 커다란 둥근 원판이 정면으로 보이게끔 아귀가 들고 있다. 원판 위로 아귀의 머리가 보인다. 양옆으로 크게 벌린 팔과 손이 원판을 붙잡고 있다. 원판 아래로는 한쪽 발이 노출되었다.

 

그 발의(정면에서 보아) 오른쪽 옆으로는 원숭이가, 마치 운명의 주사위가 던져질 롤렛(바퀴라는 뜻의 게임 회전판)을 돌리는 듯 자세를 취하고 있다.(그림 2) 변상도의 좌우 윗부분에는 '第六 現前地(제6의 현전지: 진리가 바로 앞에 나타나는 경지, 불이不二의 평등성을 체득하는 경지)' 및 12인연'이라는 용어를 만날 수 있다. 12인연을 보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는, 존재와 비존재가 둘이 아니라는 평등성을 체득하게 된다.

 

'12인연'은 '12연기'를 말한다. '삶과 죽음'이라는 환영을 만드는 근원이다. 무명을 바탕으로 일어나는 갈애가 어떻게 윤회를 전개시키는지, <육도윤회의 원판>에 상세히 도해되었다. 삶을 다시 부여잡는 가장 큰 요소인 '갈애'는 돌고 도는 윤회의 에너지 판을 받치고 있는 거대한 '아귀'로 묘사되었다.

 

원판의 한가운데는 부처님이 있고 그 위로는 극락을 포함한 법계, 그 아래로는 오리· 뱀 · 멧돼지로 표현된 동물의 세계, 확탕지옥으로 묘사된 지옥의 세계, 벌거벗고 굶주린 아귀의 세계가 둘러 있다.(그림 3) 그 외곽으로는 사람으로 태어나 겪게 되는 일련의 삶이 그려져 있다.

 

아기로 탄생해 엄마 품에서 재롱부리는 모습, 봇짐을 메고 집을 떠나는 모습, 이성을 만나는 모습, 여러 가지 송사에 얽히는 모습, 늙어서 지팡이 짚는 모습, 병들어 침 맞는 모습, 죽어서 관에 담겨 운반되는 모습 등.(그림 1,2) 그런데 이것으로 끝난 게 아니다. 가장 외곽의 테두리에는 항아리 같은 것이 무수히 둘러져 있다.

 

항아리 같은 것의 앞과 뒤를 보면, 뱀으로 들어갔다가 사람 모습으로 나오고, 다시 말의 모습으로 나왔다가 또 사람으로 환생한다.(그림 2) 이 부수한 항아리는 '윤회의 터널'인 것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윤회의 터널을 무수하게 도돌이 하였는가. 윤회의 터널을 전문 용어로 중음기간이라 한다. 티베트에서는 바르도라고 하는데 죽어서 다시 태어나기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그 기간이 일반적으로 49일이기에 49재를 지내게 된다. 그림에서 확인하듯 사람으로 죽어 꼭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지는 않는다. 동물로 태어나기도 하고 지옥에 태어나기도 한다. 지은 업에 따라 육도(六道 :6개의 세상 -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를 오가며 윤회하는 것이다.

 

물론 무한반복 윤회의 고리를 끊는 방법은 있다. 바로 석가모니께서 처음 발견하시고 설파하신 방법, 12 연기를 보는 것이다. 그래서 " 연기를 보는 자나(부처 또는 깨달음)을 본다." 하셨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연기를 볼 수 있을까? 

(계속)

 

 

 

 

 

월간통도.2022. 04.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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