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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에 가면 주요 전각에 불상이 모셔져 있는데 불상이 없는 사찰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불상은 언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을까? 석가모니가 살았던 시대에도 불상을 제작했을까? 그리고 불상의 외형은 일반적인 사람의 모습과 비슷하기도 하고 뚜렷하게 다른 점도 있는데, 그러한 특징에는 무슨 상징이 숨어 있는지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고 붓다가 된 모습을 재현한 불상의 제작과 불상을 만들지 않았던 시기, 무불상 시대가 입니다.

보리수 아래에 대좌가 있고 주변에는 무기를 들고 있는 여러 명의 악마가 보입니다. 그런데 대전은 비어 있습니다. 원래는 붙다가 있어야 할 자리지만 주인공의 모습은 찾을 수 없는데 왜 그럴까요? 당시 아직 불상을 제작하지 않았던 시기기 때문에 붓다가 있어야 할 자리에 아무도 등장하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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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미술사에서 처음부터 불상이 존재했던 것은 아닙니다. 현재 남아 있는 인물로 추정해 보면 석가모니가 살았던 시대부터 약 500년간 불상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불상을 만들지 않았던 시기를 무불상 시대라고 부릅니다. 당시 불전도에도 붓다의 형상을 그리지 않고 대신 상징물로만 표현했습니다. 스투파나 보리수 혹은 법륜, 대좌나 발자국 등을 표현해서 붓다를 상징했습니다.

 

열반을 상징하는 스투파와 깨달음의 나무인 보리수, 진리의 수레바퀴는 모두 붓다 일생과 연관된 중요한 상징물입니다. 산체스투파의 난관과 탐문에 묘사된 다양한 이야기 속에도 붓다는 흔적만 추정할 수 있을 뿐 자세한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비록 인간의 형상으로 재현되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상징의 표현은 오히려 무한한 상상력을 갖게 합니다.

 

그렇다면 왜 불상을 오랫동안 만들지 않았을까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인도에서 사람의 형상을 만들어 숭배하는 관습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지금은 상을 숭배하는 모습이 익숙하고 어색하지 않지만 당시에는 보편적이지 않았습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슬람교에서도 인간의 형태로 성을 만들거나 숭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며, 이런 전통은 서아시아에서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금제사리기

불교가 처음부터 붓다를 숭배하는 종교가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야 합니다.그 땅은 진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전한 위대한 스승으로 존경받았지만 신처럼 숭배되는 존재는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깨달음의 진리, 즉 다르마라고 하는 불법이 더욱 중요했습니다. 따라서 붓다를 신앙하기보다는 수행을 통해 그와 같은 길을 걷기를 소망했습니다. 붓다처럼 깨달음을 얻는 것이 궁극의 목표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상을 만들거나 숭배할 필요가 없었고,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관행은 금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인간 세상을 초월하여 열반의 세계로 들어간 존재를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재현한다는 것도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지속된 후에 붓다를 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정당성이 담보되어야만 하고, 신성함을 보여주는 형식적인 요소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불상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특별한 상징을 덧붙이게 됩니다.

불상이 제작된 시기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지속되어 왔습니다.학자들 사이에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기원을 전후해서 불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유물이 아프가니스탄의 비마란에서 출토된 금제사리기입니다.

 

사리기 외면에는 불입상이 묘사되어 주목됩니다. 이 유물은 아제스의 은하와 함께 출토되어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데, 은하가 샤카와 아제스의 것이라면 사대기의 연대를 기원전까지도 올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은화가 후대에 독재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시기를 올려보는 데는 이견이 있고 기원 후 1세기 유해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불입상은 머리 육계가 있고 콧수염이 분명하며 한 손은 가슴 앞에 두고 있습니다. 얼굴과 몸은 정면을 향하고 있는데 발은 옆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초기에 만들어진 불상의 특징으로 보입니다. 불상이 만들어진 시기에 인도에는 쿠잔 왕조가 들어섰습니다.

쿠션 왕조는 현재 파키스탄의 페샤아로와 인도 북부의 마투라와 같은 도시 번성이 있었고 점차 국제적인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특히 쿠션 왕조의 불상은 간다라와 마투라를 중심으로 제작되기 시작했습니다. 두 지역 가운데 어느 곳에서 먼저 불상을 만들었는지는 20세기 초부터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보통 서양의 학자들은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간다라에서 먼저 불상을 창안했다고 보았고, 반면 인도 학자는 본질적으로 인도 전통에 바탕을 두고 불상이 제작되었으며 간다라보다 앞선다고 주장했습니다. 요즘은 두 지역에서 각각 독자적으로 혹은 동시에 불상이 만들어졌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간다라와 마투아는 불상 제작의 중심지로 비슷한 시기에 유명했지만 두 지역의 불상은 뚜렷한 차이를 보입니다. 간다라는 알렉산더 동방원정 이후 그리스 문화의 영향을 받았으며, 쿠산 왕조가 성립되고 정치적 중심지로 부각되면서 다수의 스투파가 건립되고 다양한 불상이 제작되었습니다.

 

간다라 불상은 대부분 회색이나 검은색이 감도는 표나무로 만들어졌습니다. 불립상은 전체적으로 사실적인 표현이 눈에 들어오는데 큰 천으로 몸을 감싸고 장신구는 걸치지 않은 차림입니다. 머리카락을 끌어올려 상투 모양으로 틀고 콧수염 안에 있는 얼굴입니다.

 

복식은 숙녀들과 같지만 머리는 삭발하지 않고 긴 머리여서 의아한 생각이 듭니다. 싯다르타는 출발하면서 머리를 잘랐을 것이고, 다른 승려들처럼 삭발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불상은 머리를 묶어 올린 모습으로 제작되었습니다. 출가한 보통의 수행자와 다르게 머리 모양을 한 것은 붓다가 일반인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인도에서 전통적인 대인사, 즉 훌륭한 인간의 신체적 특징에 관한 전통을 따른 것이며 숱이 많은 머리카락을 상투로 틀은 모습은 고결한 머리 모양을 의미했습니다. 간다라의 다른 불좌상도 입상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머리 위에 큰 육계가 보이고 콧수염이 있으며 옷주름도 사실적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입상에 비하면 옷을 입고 있는 방식이 다른데, 한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식을 편단우견식이라고 부르며 입상은 통견식이라 부릅니다.

 

인도 중북부에 위치한 마투라도 중요한 도시였으며, 마투라불상 제작의 중심지이었습니다. 마투라 인근에는 붉은색 사암이 흔해 불상을 만드는 데에도 사암이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붓다는 편단우견으로 옷을 입었고 미간에는 깨달은 자의 눈썹 사이에 백호를 표현하였고, 머리는 마치 소라 고동 같은 모양의 육계가 있고 손바닥과 발바닥에는 법륜이 있습니다. 

 

머리 뒤로는 광배가 있고 주변으로 보리수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한 손은 무릎 위에 다른 손은 들어서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간다라 불상에 비하면 옷차림이 다르게 표현되었고, 몸체 세부가 좀 드러나 보입니다.

 

두 지역의 불상은 재료의 차이가 있고 또 부분적으로는 다른 표현도 여러 곳 눈에 들어옵니다. 두 불상은 비슷한 점도 있습니다. 세부 표현은 다르지만 모두 머리 위에 육개가 있고 눈 사이 미간에 백호가 있습니다. 광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특징은 어떻게 공유되었을까요? 우리가 어떤 상을 보면 불상이라고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공통된 특징은 무엇일까요?

 

인도에서 귀인이 지니는 신체 특징을 불교에서 받아들였고, 이는 붓다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정착하게 됩니다. 붓다의 신체를 체계화한 내용은 여러 경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경전마다 모두 내용이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크게는 32가지로 구분하고 많게는 80가지로 구분하기도 합니다.

 

대표적으로 고귀함과 지혜를 상징하는 육계가 있고 깨달은 자의 눈썹 사이에 나는 백호가 있습니다. 백호는 도더라지를 둥근 점으로 묘사하거나 구멍을 파고 보석이나 유리를 채워 넣기도 합니다. 또 광배도 중요한데 붓다의 몸체에서 나오는 빛을 조형화한 것입니다. 신성함과 위대함을 보여주는 표현인데, 머리에 비추는 두광이 있고 몸체 뒤에 나타나는 신광, 그리고 전체를 감싸는 전신광이 있습니다.

 

두광과 신광을 겹쳐 표현한 것도 있는데 이중원광이라고 부릅니다. 끝부분을 뾰족하게 해서 배와 같은 모양으로 만든 주형 광도 나타납니다. 32가지 중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불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에 하나가 대좌입니다.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을 때 앉았던 풀방석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상은 언제나 대좌 위에 모시게 되는데 형태의 특징에 따라 다양하게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가장 일반적인 형식으로는 연꽃 모양으로 만든 연화좌가 있습니다. 연꽃은 더러운 진흙에서도 청정함을 잃지 않고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때문에 불교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자가 장식된 경우는 사자좌로 부르고 위험과 위세를 뜻합니다. 또한 붓다가 입은 옷자락이 흘러내려 계절을 덮은 경우도 나타나는데 이런 형식은 상현좌라고 부릅니다. 옷주름 표현이 강조되면서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으로 중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해서 우리나라에도 들어옵니다.

 

불상을 이해할 때 중요한 부분이 손의 특징입니다. 불교에서 특별한 의미를 담은 손 모양을 수인이라고 부릅니다. 또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것을 지물이라고 합니다. 중상의 의미를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구분하고 대중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대표적인 수인 두 가지를 먼저 붓다가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는 순간을 상징하는 항마촉진입니다. 오른손은 지신을 부르는 촉지, 다섯 손가락을 아래로 편 모양으로 무릎 밑을 향하고 있습니다.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가운데 있습니다. 수인의 특징에 따라 좌상에서만 볼 수 있으며 일찍부터 많이 제작되었고 우리나라에도 크게 유행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붓다의 탄생물에 나타나는 수인입니다. 한수는 위로, 다른 수는 아래로 향한 모습으로 천지인이라고 부릅니다. 일반적으로 붓다는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으며 수인으로만 특징을 표시합니다. 불상은 성격에 따라 석가모니, 아미타, 비로자나 약사불 등 다양하게 제작되는데, 약사불만 약을 담는 그릇인 약함을 들고 있습니다. 이런 수인을 약기인이라고 부릅니다.

 

불교에서는 위계와 지위에 따라 여러 종류의 상이 있습니다. 붓다는 불, 부처 또는 여래라고도 부릅니다. 원래는 석가모니에 대한 명칭이지만 불교 교리가 발달하면서 여러 정토 세계와 시방세계를 관장하는 모든 부처를 가리키게 됩니다.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이전에 과거에도 부처가 있었고, 미래에도 세상을 구제해 줄 부처가 있었다고 믿었습니다. 과거 부처는 연등불, 미래 부처는 미륵불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정토에는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다음으로 부처를 도와 대중에게 자비를 베풀고 중생의 구제와 교화에 힘쓰는 보살이 있습니다.

 

불상의 좌우에 등장하는 협시보살의 기는 한 번쯤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보살은 보리살타의 약침으로 깨달음을 구하여 중생을 보살피면서 궁극적으로는 성불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깨달음을 얻기 전 붓다를 의미했지만 대승불교가 일어나면서부터 부처의 다음 지위를 갖게 되고 다양하게 분화하면서 여러 보살이 나타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미륵, 관음, 문수, 보현, 지장보살 등이 있고, 외형은 불상과 달리 각종 장신구를 걸치고 있는 귀족의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또한 각각의 역할에 따라서 정경이나 보주 혹은 지팡이와 연꽃 등의 지물을 들고 있습니다. 보살은 단독으로도 제작되지만 불상과 함께 표현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석가모니 불은 보통 문수와 보현보살과 함께 나타나고, 아미타불은 관음과 세지보살과 어울립니다. 그렇지만 이런 특징이 엄격하게 지켜지는 것은 아닙니다.

 

불교가 오랜 시간 여러 지역에서 발달했기 때문에 예외적인 경우도 많고 또 시대에 따라 변화하기도 했습니다. 불상이나 보살상은 자세에 따라 구분되기도 하는데요. 크게는 입상, 좌상, 와상 등이 있고, 좌상은 또 특징에 따라서 좀 더 세분됩니다. 와상은 와불이라고도 하면서 누운 자세 불상을 뜻합니다. 부처의 열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좌상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가장 대표적인 모습은 결가부좌입니다.

 

붓다가 보리수 아래 참선에 들 때 취한 자세이기도 합니다. 결가부좌에서 한쪽 다리를 내리면 반가좌입니다. 보살상에 많으며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예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반가사유상이 있습니다.

 

한쪽은 결가부좌를 하고 다른 다리는 무릎을 세우고 앉는 자세를 유낭좌라고 부릅니다. 역시 보살상이 주로 나타나고 고려시대 불상에서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밖에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경우지만 의자에 앉는 자세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무불상 시대에서 불상의 탄생, 그리고 인도 초대 불상 제작의 특징들은 불상을 제작하는 데 있어 고유한 상징과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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