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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 스님이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돌아오는 길에 중국 태화지 근처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신인이 나타나서 물었다. "어찌 이에 이르게 되었는가?" 스님이 답하기를 "보리를 구하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신인이 예를 갖추 또 묻기를 "너희 나라는 어떤 어려움에 빠져 있는가?" 하니 스님은 "우리나라는 북쪽으로 말갈을 연하고 남쪽으로 왜국을 접하고 있고 고구려와 백제 두 나라가 번갈아 변경을 침범하여 이웃나라의 침략이 종횡하니 이것이 백성의 걱정입니다." 라며 신라의 위기를 전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신인이 대답하기를 "황룡사 호법룡은 나의 장자로 범왕의 명을 받다 그 절에 가서 호위하고 있으니, 9층 탑을 조성하고 팔관회를 베풀면 외적이 해를 가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말이 끝나자 신인은 홀연히 사라졌다.

용을 움켜쥐고 있는 통도사 천왕문의 남방 증장천왕

 

자장 스님이 당나라에서 신라로 돌아오는 길에 겪은 신이한 일이다. 이때의 신인은 황룡사에 살고 있던 용의 아버지인 셈이다. 스님은 신라로 귀국하여 신인이 말한 대로 황룡사에 9층 탑을 건립했다. 또 영축산에 통도사를 지으려 하는데, 이때 또 다른 용을 만난다. 영축산의 큰 연못에 있는 아홉 마리 독룡이었다.

아무리 극심한 가뭄이 와도 절대 마르지 않는 통도사의 구룡지

 

자장 스님은 용에게 떠나 줄 것을 요청했지만 용들은 꿈적도 하지 않았다. 그때 자장 스님이 법력으로 못의 물을 펄펄 끓게 만들자 용들이 달아났다. 아홉 마리 용 중 다섯 마리는 남서쪽으로 도망가다가 떨어져 죽었다. 이곳이 현재 서운암 뒤편의 오룡골이다. 세 마리는 동쪽으로 달아났는데 여기가 삼동골이다. 도망가던 한 마리는 영축산 바위에 부딪혀 피를 흘리는데 이 바위가 무풍한송로에 있는 용피바위다.

 

남은 한 마리는 눈이 멀어 도망가기를 포기했다. 그리고 자장 스님에게 청하기를 "눈이 멀어 갈 수 없으니 연못에 그대로 있게 해 주시면 절을 지키겠습니다."라고 한다. 스님은 용의 청을 받아들여 큰 못은 메우고 작은 못을 남겨 두어 용이 살게끔 했다. 현재 금강계단 앞에 있는 구룡지가 바로 그것이다.

 

통도사에서는 매해 단오절마다 용왕재를 봉행한다. 바다와 거리가 먼 산중의 절에서 용왕재를 지낸다는 게 사뭇 생소하지만 통도사의 구룡설화를 되짚어 보면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아무리 극심한 가뭄에도 결코 마르지 않는다는 신이함은 용의 신통력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통도사 극락보전 반야용선 벽화

이곳뿐만이 아니라 용은 상상 속의 신성한 동물로서 불교에 자주 등장한다. 극락정토로 중생을 실어다 준다는 반야용선도 마찬가지다. 용머리에 용 꼬리를 한 이 배는 일반적인 배의 역할이 아니라 반야바라밀의 지혜를 상징한다. 지혜를 상징하는 동물로서 용이 차용된 것이다. 우리가 흔히 백중기도나 천도재 때 영가를 모시는 배의 모양이기도 하다.

 

용은 육지와 해상, 하늘과 땅 어디든 오가는 신성한 동물이다. 다시 말해 용이 갈 수 없는 곳은 없다. 극락세계로 데려다줄 수 있는 신비한 동물은 '용'이 될 수밖에 없다. 

 

통도사 범종각 목어

 

통도사 범종각에도 재미있는 목어가 있다. 범종각의 목어는 두 마리인데 한 마리는 물고기에 가깝게 생겼고 한 마리는 용의 모습에 더 가깝다. 한 마리는 이제 수행을 시작한 목어고, 다른 한 마리는 이미 경지에 올랐으므로 이 두 마리를 비교해 보는 것도 재미있는 요소다. 목어는 바다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을 구제하기 위해 치는 법구로 알려져 있다. 또 물고기는 잘 때도 눈을 감지 않기 때문에 수행자가 혼침에 빠지지 않고 정진할 것을 가르치기 위해 만든 법구이기도 하다

 

용은 수많은 신화에 등장한다. 부처님께 룸비니동산에서 태어나셨을 때, 아홉 마리의 용이 태자와 육신을 씻겼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통도사 전각의 대부분에 용 조각이 새겨져 있고, 여러 장엄물에 빠지지 않는 동물이기도 하다. 매해 음력 5월 5일에는 통도사의 연례행사인 단오절 용왕재가 봉행된다. 화마로부터 도량을 지키고자 행하는 오랜 의식이다.

 

'왜 산중 절에서 용왕재를 지낼까?' 1300여 년 동안 지켜 온 이곳, 영축산 아래서 통도사가 안전하게 불법을 외호하며 역사를 이어 온 것에 분명 호법룡의 영향이 적지 않았음이다.

 

 

 

월간통도. 2022. 06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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