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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운 마음은 다스릴 수 있는가? 혐오의 마음을 안 생기게 할 수 있는가? 이런 마음은 어떻게 생기는가. 마음이 생기는 원리. 그 과정을 본다면, 생겨나려는 마음에 태클을 걸 수 있다. 혐오의 마음과 갈애의 마음은 삶을 고통스럽게 한다. 그것은 멈추지 않고 부단한 생멸의 연속 파노라마로 파도친다.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하릴없이 놀아난다. 이러한 번뇌의 마음에 휘둘리는 것이 진정 지겹다면, 붓다께서 말씀하신 마음 공략법 또는 번뇌 소멸법을 간략히 소개하니 주의 깊게 읽어보시기 바란다.

그림 1 : <화장찰해도> 조선후기, 마본채색, 경북예천용문사 소장

마음 일어나나는 과정들

마음이란 것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그 근원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마음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전제 조건이 있다. 6근과 6경이 우선 만나야 한다. 이것을 12처라고 한다. 12처는 우리의 모든 생명체의 인지과정으로 불교에서 '일체법'이라고 일컫는 것이다. 즉 우리가 체험하는 세상 '일체 모든 것'은 결국 12처라는 것이다.

 

"일체(너와 나, 지구의 생명체, 우주)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붓다는 '일체는 12처이다."라고 말하시며, "만약 내가 말하는 일체가 일체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다른 일체를 말한다면 그것은 그저 개념일 뿐이다.(<잡아함경> 13권, 제319경)"라고 하신다. 붓다께서 말씀하신 내가 일상으로 체험하는 내가 삶으로 살고 있는 나의 전부인 실질적인 일체! '12처'란 무엇인가.

 

12처란 6근과 6경을 말한다. 6근(6개의 기관)이란, 눈 · 귀  ·코  ·혀  ·몸  ·인식의 기관을 말한다. 6근에 상응하는 외부 경계가 있는데 이는 6경으로 색(형상) ·성(소리)   ·향(냄새)  · 미(맛)  · 촉(감촉)  ·법(마음작용)이다. 6근을 '세상이 내게 들어오는 문'이라 해서 6문 또는 6 입이라고도 한다.

 

6근과 6경은 각각 따로 존재할 때는 서로 기능을 못하지만 이것이 만나면서 6식(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이 생겨난다. 양자가 만나는 것을 '촉'이라 하고 촉을 통해 '식'이 일어난다. 이는 손뼉 소리에 비유된다. "비유하자면 두 손이 서로 마주쳐 소리를 내는 것과 같다.(《아함경》<수성유경>)" 한 손은 '눈(안근)'이고 다른 손은 '풍경(색)'이다. 두 손이 서로 만나면서(촉) 손뼉 소리인 불꽃(식)이 일어난다.

 

 

엄식의 파도에 부딪쳐 일어나는 것들

6근과 6경의 만나면서 6식이 일어나고, 이는 순식간에 수受 [느낌: 좋다 · 싫다  ·중간이다]를 불러일으킨다. '좋다'는 더 취하려는 마음으로 반응하고, '싫다'는 혐오와 분노로 반응한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느낌은 내 업장 또는 무의식 속 정보의 저장고 속에서, 과거 유사한 느낌을 받았을 때와 함께 저장된 대상을 내 의식표현 위로 던져 올린다.

 

이를 상想(특징 무엇으로 지각함)이라 한다. '6근과 6경의 만남(촉) →6식 →수 →상'은 섬광처럼 자각 못하기에 무의식적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상'의 다음 단계는 '심尋"인데 여기가 중요하다. 심은 '일으킨 생각'으로 쉽게 말하면 마음이 쏠리는 방향으로 이다. '심'의 단계에서 스스로의 업 또는 업식대로 주의력이 쏠려 의심 · 추측 · 판단 등이 일어나고 최종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하나의 대상 또는 현상을 두고도 사람마다 '반응'이 천차만별인 이유는 '심' 단계에서 일어나는 업행이 각자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성격 차이'라는 것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업식(무의식) 속의 다년간 경험과 체험을 통해 이미 내재된 것에 반응 체계가 다르다는 것이다.

 

상대의 반응 체계가 나와 다르다고 해서 너의 반응체계는 왜 나의 반응체계와 다르냐고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의 오염된 반응체계를 단계별로 알아차려 이것의 자동 작동을 맘추는 것, 오염된 마음 작동에 태클을 거는 것이 바로 심수관의 핵심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드디어 '마음의 정화'에 첫걸음을 내딛는다. 불가향력의 업식 무의식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마음이 정화된 자리 드러나는 '여의주' 세상

그림 2 : "여의주가 한량없이 온 누리에 두루하도다." 그림 1의 부분

이를 업장소멸이라고 하는데 업장이 소멸된 자리에서 이제 일체 세상은 어떤 모습을 드러낼까? 여의주 구슬 천지이다. "신령한 이 구슬, 지극히 영롱하여/ 본체는 항하사(갠지스강의 모래알)를 둘러싸 안팎으로 비어 있다. 사람마다 부대 속에 당당히 간직해, 가고 오고 모이고 흩어지는 희롱이 끝이 없다/ '마니' 혹은 '영주'라고 하니, 이름과 모양은 많은 듯, 하나 본체는 하나다/ 세계마다 티끌마다 분명하니 마치 보름달이 가을 강에 한가득인 듯(중략) 아하하하! 이 어떤 물건인고!/ 일 이 삼 사 오 육 칠/ 세어보고 뒤쳐보아도 끝이 없으니/마하반야바라밀이라네." (나옹화상의 《완주가》또는 <영주가>)

 

이러한 경지를 그림으로 표현한 명작으로 <화장찰해도> (조선후기, 경북 예천 용문사 소장)가 있다. 안팎으로 무수한 '구슬 또는 여의주'를 《화엄경》에서는 '세계종世界種'이라고 표현한다. "한 세계종이 일체에 들어가며/ 일체가 하나에 들어가되 남음이 없으니/ 체상體相은 본래대로 차별이 없음이라/ 짝도 없고 한량없어 온 누리에 두루하도다." (<화엄경> 화장세계품)

 

 

 

월간통도 2022.11 중에서 (p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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