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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과거 숙세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렇게 악독한 아들을 두게 두었나요?

  더 이상 이 혼탁하고 사나운 이 세상에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아예 죽고 싶다." 모든 인연 끊겠다." 이 세상에 대한 염오를 토로하는 위제희부인. 《관무량수경》도입부에 나오는 <경을 설하게 된 인연>의 내용이다. 애지중지 키운 아들(아사세 태자)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각각 깊은 골방에 가두고 굶겨 죽이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슬픔과 절망 속의 부인은 부처님께 "아· · · 진정으로 원하옵건대 청정한 업[淸淨業]으로 이루어진 안락한 세상, 극락極樂을 보여주십시오!"라고 울부짖는다. 그러자 부처님은 "부인이여, 극락세계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마음을 가다듬고 마음을 한 곳에 모으십시오!"라고 하신다. '마음을 한 곳에 모으라.'는 선정[禪定, 사마타] 수행에 대한 코칭이 시작된다.

그림 1 <제6총관 변상도>, 《어제불설관무량수불경》, 1425년, 판화, 동국대학교도서관 소장, "第六總觀,樓中天樂 寶樹地池 讚佛法僧 一念員成"이라는 게송이 우측에 있다./ 제6총관 누각 속에는 천상의 선율이 흐르고, 보배로운 나무 ,땅, 연못이 있다. 모두 삼보(불법승)를 칭송, 일념으로 원성(깨달음)을 이룬다

"내가 뭔 죄를 지었길래!"

업장이 닥쳤을 때 우리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길래?" · "내가 뭔 잘못을 했길래!" · "내가 어찌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되어." 등, 상기 위데휘 부인과 같이 반응을 한다.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고 마냥 억울할 뿐. 이러한 태도는 우리 중생들이 취하는 공통적이고도 일반적인 반응이다. 내게 닥친 업장이 난데없다고 느끼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인과(因果, 원인과 결과)'를 보는 통찰지가 없기 때문이다. 업장의 원인은 현생뿐만 아니라 세세생생 전생까지 소급된다. 우리의 표면적인 삶과 죽음에 상관없이 '업業'이란 것은 자신만의 운영 철칙대로, 속절없이 진행된다. 처절한 고통 속의 부인에게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서방극락 연꽃에 왕생하고자

돌아가는 길 속세 인연 끊겠다고 말하지 말라

단지 지는 해가 매달린 북과 같다 여기고

오롯이 눈앞에 분명히 보도록 하라('제1일몰관 : 지는 해를 관하라)"

<출처 : 「관경16관변상도」(고려시대 1323년 일본 지은원 소장)의 하단 화기 도입부>

 

거두절미하고 일원상('지는 둥근 해[일몰]'에 비유)에 오롯이 집중하라 하신다.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정定]을 체득하라는 것이다. 관무량수경의 '극락을 체험하는 16관법' 내용에는 "눈을 뜨거나 감거나 마음을 한결같이 대상에 집중하여 놓지 말과 관하라."라는 문구가 계속적으로 반복된다. 이렇게 하나의 대상(화두 ·아미타 염불 · 초기불교 40가지 선정 주제 · 관무량수경 16관법에 제시된 대상 등 어느 것이든 좋다)에 집중하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오롯한 집중, 계속되면 · · · 나타나는 현상

하나의 대상에 끈질기게 집중하면, '하얀빛'이 나타나고 그것이 '유리'처럼 투명해진다. 아미타 3부경(아미타경, 무량수경, 관무량수경)에 공통으로 언급되는 '유리의 땅'이 나타난다. 사마타 수행의 특징은 세상이 선명해지고, 투명하고 영롱하게 빛이 난다는 것이다. 집중도가 강할수록 이 오묘한 빛의 강도와 크기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또 세진다. 실로, 온통 무량광이다. 무량광, 즉 '무량한 빛'이란 산스크리스트 아미타바의 의역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아비타불이라고 칭하는 경지는 '무량한 빛과 무량한 생명(무량수)'이 무상하게 파도치는 세상이다.

 

처음에는 내가 '빛'을 대상으로 보다가, 나중에는 그 빛이 거꾸로 '나'를 대상으로 하여, 나를 순식간에 발아들이고 만다. 순간, 주객이 하나가 되는 일경성을 맛본다. 극락의 해 · 물 · 땅 · 나무 등을 관해 나가다가 제6관 총관에는 급기야 극락의 누각에 떡하니 들어앉게 된다. 조선 전기 왕실판본 《어제불설관무량수불경》의 해당 변상도(그림 1,2)를 보면, 총관을 설명하근 게송에 '일념원성'이란 표현을 발견할 숭 있다.

 

전도몽상, 이제 '거지'가 아니라 '왕'으로

'일념으로 원성을 이루었다.'라는 말은 선정(사마타) 수행을 통해 물아일체 또는 범아일여(온 만물과 하나 된 경지)가 되었다는 말이다. '나와 대상'으로, '주체와 객체'가 나뉘어 세상이 인식되다가, '주객이 하나' 된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의식이 내 몸뚱이에 갇혀 있다가, 거기에서 벗어나 바탕의식 또는 우주의식과 하나 된 상태를 말한다. 이렇게 되면 유식사상에서 말하는 '평등성지'의 관점이 확보된다.

 

개가 평생토록 킁킁 바닥 냄새만 집착해 맡다가, 어느 날 천공의 보름달을 본다 → 계속 본다(사마타 수행) → 보름달과 하나가 된다 → 이제 보름달 그 자체가 되어 세상을 비춘다 → 빛 속에 보든 것이 하나이다[일경성].

 

그림 2 극락의 누각에서 두루 관하다. 그림 1 <제6총관 변상도>의 부분

'개의 시점'에서 '보름달의 시점'으로의 대대적 전환이 온다. 보름달이 되어 세상을 내려다본다. 보름달이 비추는 풍경 속에 내(개)가 있다. 이제는 나를 객관적 풍경 속에서 본다. 그러니 고통이 사라진다. 여태껏 전도몽상(앞뒤가 뒤집어진 꿈같은 허상)되어 살았구나! 항상 '이것 달라, 저것 달라, ' 허덕이는 거지의 입장에서, 이제는 무엇이든 주는 왕의 자리로 바꿔 앉았다. 사마타 수행의 첫 결실인 일경성(또는 초선정)은, 찬란한 극락의 누각에 주인공으로 들어앉은 모습(총관의 부분, 그림 2)으로 표현된다.

 

 

 

월간통도 2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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