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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개발이 활발해질수록 실험에 쓰이는 동물도 늘어납니다. 2021년 국내에서 각종 실험에 쓰인 동물은 488만 마리에 이릅니다. 10년 전인 2012년 183만 4천 마리와 비교하면 166%가 증가하였습니다. 특히 고통을 가장 심하게 야기하는 실험 극심한 고통이나 억압 또는 회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동반에 이용된 동물 비율이 44%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였습니다. 동물 실험은 사람에게 사용할 약을 만들기 전 다양한 효과와 부작용 등을 확인하기 위해 주로 이뤄집니다. 하지만 실험에 사용되는 동물은 사람과 생물학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동물에게 약을 주입해서 나타난 반응이 사람과 같지 않을 수 있습니다. 동물 실험에서 약이 안전하다고 나왔더라도 사람까지 안전할 거라 확신할 수는 없는 셈입니다.
최근에는 동물도 동물답게 살아갈 권리 동물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과학계에서는 동물 실험을 줄이고 대체 실험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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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세포인 오가노이드

해외에선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동물 대신 첨단 기술을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동물실험을 대체하는 기술로는 컴퓨터 기반의 독성 예측 또는 빅데이터 분석과 같은 기술, 사람 세포 기반의 오가노이드, 사람의 신체를 모사하는 장기 칩 기술 등이 있습니다. 동물 세포가 인간과 달라 약물에 대한 반응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다면 인간 세포를 활용해 실험하면 될 일입니다. 인간 세포로 작은 미니 장기를 만들어서 말입니다. 이런 목적으로 만든 장기를 '오가노이드(organoid)'라고 합니다. 'Organ'(장기)과 'Oid'(유사한) 두 단어가 합쳐진 말입니다. 2009년 한스 클레버스 네덜란드 위트레흐 트대 교수가 생쥐 줄기세포로 작은 내장을 만들어내며 가능성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최근에는 오가노이드를 크게 키우는 방법에 대한 연구도 이뤄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줄기세포로 콩알만 한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고, 쥐가 자라면서 이식된 뇌도 함께 자라며 실제로 기능했고, 연구팀에 따르면, 배양기에서만 키운 뇌세포 신경세포보다 쥐 뇌에 이식한 뒤 자란 세포가 압도적으로 크다고 해요. 다만 이 방법은 오가노이드를 만드는 데 또다시 동물 실험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오가노이드를 만들기 위해서는 줄기세포가 필요합니다. 줄기세포는 모든 조직 세포로 분화할 능력을 지닌 세포입니다. 이 줄기세포는 특정 장기 세포로 진로가 정해지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장기가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줄기세포가 피부 세포가 된다면 피부 표면을 덮고 있는 조직 표피와 표피 아래 조직 진피로 나뉘면서 자연스럽게 피부 특유 구조를 만들면서 자라납니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의 이런 특징을 이용해 만듭니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실제 장기처럼 크게 만드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영양을 공급해줄 제대로 된 소화기관도 없이 장기를 키우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 입니다. 이 때문에 현재까지 성공적으로 만들어진 오가노이드는 크기가 매우 작습니다. 

동물 실험 연구 엄격히

동물 실험은 점점 엄격해지고 있습니다. 2016년부터는 동물 실험으로 개발한 화장품 판매가 금지 되었습니다. 연구를 위한 동물 실험도 더 까다로워졌어요. 연구자가 동물로 실험을 하기 위해서는 실험 계획서를 작성한 뒤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승인을 받아야 했습니다. 특히 동물실험윤리위원회 소속 수의사가 동물의 상태를 계속 확인하고, 실험에 쓰인 동물이 지나치게 고통을 느끼거나 상태가 심각하게 좋지 않으면 실험을 중단하고 '인도적인 안락사'를 진행하도록 권고합니다.


'장기 칩'도 실험

반도체처럼 '장기 칩'을 만드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습니다. '랩온어칩(Lab on a chip)'으로 불립니다, 인간 장기와 동일하게 기능하는 부품을 만드는 기술이라고 보면 됩니다. 작은 조각 위에 오가노이드 세포를 놓고 거기에 인공적으로 신체 대사가 이뤄지도록 해 반응을 보는 겁니다.
이 방법은 미국 하버드대 비스생체모방공학연구소가 2010년 폐 세포와 모세혈관 관계를 재현한 약 3㎝ 크기 '렁온어칩(Lung on a chip)'을 처음 만들면서 세상에 알려졌어요. 장기 전체 기능을 다 구현하기보다는 특정 현상을 재현하거나 특정 부위에서 약물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하는 데 초점을 맞춥니다. 공학적으로 구조를 만들고, 그 위에 세포나 오가노이드를 얹는 식입니다. 심장은 펌프질을 하면서 혈액이 온몸을 돌게 하고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합니다. 혈액은 구석구석 돌면서 갖고 있는 산소를 모두 써버리면 새로운 산소를 공급받기 위해 폐로 갑니다. 폐는 바로 이 혈액에 새로운 산소를 공급합니다. 폐 세포 간 가늘고 길게 퍼진 모세혈관 사이에서 산소와 이산화탄소 교환이 일어납니다. 폐 세포는 모세혈관에 산소를 주고, 모세혈관은 폐 세포로 이산화탄소를 보냅니다. 모세혈관에 있던 혈액은 새로운 산소를 받아 다시 심장으로 향합니다.
렁온어칩은 폐 형태를 본떠 만든 칩 구조물입니다. 그 위에 폐 세포와 모세혈관 세포를 배양해 오가노이드를 만듭니다. 이 폐·모세혈관 세포가 정상적으로 기능하려면 심장이 펌프질을 해 혈액을 돌게 해야 하는데 이 칩에는 실제 심장 대신 인공 진공펌프를 달았습니다. 이 진공펌프가 폐가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는 것처럼 팽창과 수축을 반복하도록 하면서 모세혈관 쪽에 혈액이 흐르게 합니다. 그러면 폐·모세혈관 세포가 인간 몸속처럼 정상 작동하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 특정 약물을 주입하면 폐·모세혈관 세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볼 수 있게 되는 셈입니다.
렁온어칩을 시작으로 다양한 칩이 개발되고 있습니다. 실제 눈처럼 곡면의 각막으로 이뤄져 있고, 눈꺼풀이 깜빡거리도록 설계된 '블링킹 아이온어 칩(blinking eye on a chip)'도 개발되었습니다. 이 인공 눈꺼풀은 실제 눈꺼풀처럼 분당 12회씩 깜빡이는데, 깜빡임 횟수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눈꺼풀 상태를 안구건조증의 상태와 유사하게 만든 뒤 신약 효과를 검증하거나, 콘택트렌즈 실험 등에도 사용할 수 있답니다.

신기술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에 아직은 동물 실험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신약 후보 물질을 최소한 안전 보장도 없이 실제 사람에게 투여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인간은 늘 그랬듯 새로운 답을 찾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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