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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도사는 휠체어나 유모차가 다니기 좋은 지형으로 곳곳에 약자들을 배려한 구조물이 있어 가족 단위의 참배객들이 많다. 평지의 사찰이 가진 이점이 크다. 많은 이들이 통도사를 편안한 도량으로 여기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도량 옆으로는 통도천이 흐르고 있고, 산문을 지나 총림문, 일주문, 천왕문, 불이문을 지나기까지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산책길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동선이다. 하지만 참배를 목적으로 한다면 약간의 의문이 든다. 일반적으로 여러 문을 거쳐 중심 법당으로 가면, 도착했을 때 대웅전의 정면과 마주한다. 하지만 통도사는 도착지인 중심법당에 이르면 우리는 정면이 아닌 측면을 마주한다. 이처럼 독특한 가람배치는 통도사의 긴 역사 동안 가람이 꾸준히 확장되며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통도사는 창건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외적 요인으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역사가 단절되지 않고 사세를 유지해 온 국내 최고의 사찰이다. 신라와 고려시대를 거치며 왕실과 대중의 비호 속에 한국불교의 계율근본도량으로 자리 잡았으며, 조선시대 억불과 임진왜란의 전화를 극복하며 사세를 이어 왔다.

통도사 가람 배치도

  오늘날 통도사에 남아 있는 수많은 건물들은 창건 이후 1,4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끊임없이 건립되고, 중수되고, 이전된 결과이다. 통도사는 역대 우리나라 불교 건축이 창출한 모든 상징과 공간활용 기법들이 응집되어 있어 한국 사찰 건축의 척도로 평가되고 있다. 수많은 불전을 보유한 통도사의 건축에 대해 통도사에 없는 전각은 국내 어느 사찰에도 없다는 이야기가 통용된다.

 

  통도사의 불전 배치를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수많은 건물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과연 어떤 전각을 중심으로 전체가 형성되고 있는지 감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일주문을 시작으로 천왕문, 불이문, 대웅전으로 이어지는 중심축의 변화 과정을 살펴보면 복잡하게 전개된 건물들 속에서도 대웅전의 중심성이 흐트러지지 않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일주문에서 이어지는 중심축은 천왕문과 곧바로 통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천왕문에서 불이문으로 이어지는 시계의 변화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즉 천왕문에서 불이문을 바라봤을 때 문틀을 통해 기단의 계단만을 드러내던 대웅전이 불이문을 향해 진입해 들어갈수록 기단에서 기둥 - 공포 -처마 -지붕으로 상승해 가다가 불이문의 계단 앞에 이르면 마치 액자의 틀과도 같이 불이문의 문틀 안에 꽉 차게 전체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이는 곧 불이문의 두 기둥을 화폭으로 가정할 때 대웅전의 전체도가 화폭에 꽉 차도록 설계되었음을 의미한다. 물론 현재 관음전 건물이 대웅전을 일부 가리고 있지만, 이러한 현상은 제한된 공간 안에서 전각이 증가하면서 발생한 불가피한 부지 선정의 결과에서 비롯된 것으로 짐작된다.

 

  통도사의 가람은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으로 구분할 수 있다. 향을 올리는 곳, 즉 노전이 세 곳으로 구분되어 있다는 것은 각각의 중심 전각이 별도로 구성되어 있어 독립성을 갖추고 있음을 의미한다. 통도사는 과거 노전별로 사찰의 살림이 운영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각 노전이 개별 운영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가장 지위가 높은 상로전에는 통도사의 상징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의 정면에는 대중법회와 행사를 여는 대형 건축물인 설법전이 있다. 좌우로는 명부전과 응진전을 배치하였다. 응진전의 남쪽에는 노전인 일로향각一爐香閣이 있고, 서쪽으로는 삼성각과 산령각이 배치된 작은 공간이 나오며, 그 가운데 구룡지九龍池가 있다. 상로전의 가장 서쪽은 일반이들이 들어갈 수 없는 선원구역이다. 이곳에는 주지 스님의 처소인 보광전과 부속건물 그리고 그 뒤로 방장 스님의 거처인 정변전이 자리하고 있다.

 

  중로전의 중심 전각은 대광명전이다. 영산전과 함께 통도사의 초장 건물로 추정되며, 대광명전 앞에는 용화전, 용화전 앞에는 관음전이 있다. 대광면전 옆에는 최근에 건립된 문수전이 있다. 영산전은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고 있고 용화전에는 미륵부처님, 관음전에는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다. 대광명전은 대웅전에 버금가는 수려한 건축기법을 볼 수 있어서 조성 당시 굉장히 공을 들여 지은 전각임을 알 수 있다. 불이문에서 보면 관음전은 중로전 구역에서 불쑥 튀어나온 듯하다. 관음전 뒤로는 개산조당 · 세존비각 · 해장보각 · 용화전 · 장경각 · 전향각이 남향하여 배치되었는데, 맨 뒤의 대광명전만 서쪽으로 약간 틀어 앉았음을 눈치챌 수 있다. 그리고 용화전 앞에는 장차 용화수 아래서 성불하여 중생을 제도하게 될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세운 봉발탑이 독특하게 자리하고 있다. 또한 학인 스님들의 경전을 수학하는 강원 건물인 황화각과 3동 요사가 있고, 황화각 뒤로 통도사 역대 고승들의 진영을 봉안한 영각이 있다. 그리고 관음전 앞으로 스님들의 수행공간인 감로당과 원통방이 배치되어 있으며, 이 두 건물 지하에 대중들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공양간이 있다. 이 외에도 작은 객실과 원주실, 후원 등이 있다.

 

  하로전의 중심 법당인 영산전은 통도사 창건 당시 초창 건물로 추정된다. 영산전은 석가모니부처님을 주불로 모시고 있으며, 약사전에는 약사여래부처님,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영산전은 원래 이름이 '대웅전'으로 불리기도 했을 정도로 통도사에서는 중요한 입지를 지닌 전각이다. 또 하로전의 입구이자 도량의 초입인 천왕문 옆에는 통도사 도량을 수호하는 가람신을 모신 가람각이 자리한다. 가람각 전면에는 아침저녁 예불의식에 사용되는 사물(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걸어 둔 2층의 범종각과 연이어 만세루가 자리해 있다. 범종각의 오른편에는 서향으로 돌아앉은 극락보전과 이를 마주 보고 있는 약사전이 있으며, 그 사이에 남향한 영산전이 있다. 영산전 앞에는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삼층석탑이 있으며, 이 외에 영산전 뒤로 응향각과 명월료, 통도사 종무소와 금당 · 은당 등의 요사가 위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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