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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당나라 시대는 선종禪宗이 부흥하던 시대였습니다. 선종에는 5가 7종 五家七宗이라 하여 모두 일곱 갈래의 종파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우두종牛頭宗의 스님으로 도림道林선사라는 분이 계셨습니다. 진망산秦望山에서 자라는 커다란 소나무 위에서 수행하였기에 당시 사람들은 그 스님을 '새 조鳥'자에 '우리 과菓'자를 붙여, 조과선사鳥菓禪師라 불렀습니다. 마치 새 둥지처럼 나무 위에 가부좌를 틀고 산다는 뜻이었지요. 또는 '까치 鵲' 자에 '새집 巢' 자를 붙여 '까치집 스님'이라는 뜻의 작소화상鵲巢和尙이라고도 불렀습니다.

통도사

  어느 날, 당대의 문장가였던 백거이白居易가 항주 지방의 자사로 부임하였습니다. 자사란 오늘날로 치면 도지사와 같은 지방 행정관이었습니다. 그는 진망산에 새처럼 둥지를 틀고 사는 도인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스님! 그 나무 위는 떨어질 것 같아 너무 위험해 보입니다."
  "나는 당신이 서 있는 그곳이 더 위험해 보이오."
  백거이는 높은 나무 위보다 자기가 서 있는 단단한 땅 위가 더 위험해 보인다는 조과선사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다시 물었습니다.
  "스님! 나무 위에서 새 둥지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시는데, 깨달은 것이라도 있으면 하나 알려주십시오. 도대체 무엇이 부처님 가르침의 큰 뜻입니까?
  "모든 죄악은 짓지 말고, 온갖 선은 받들어 행하는 것이라네."
  백거이는 조과선사의 그 말에 속으로 코웃음을 치며 말했습니다.
  "그 말은 세 살배기 어린애라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놈아! 세 살배기 아이도 말할 수는 있지만 여든 먹은 노인도 실천하기 어려운 법이니라."
  백거이는 조과선사의 그 말씀에 크게 탄복하고서 대나무로 집을 지어드리고는 스님을 머물러 지내게 하고 자주 찾아가 도를 여쭈었다고 합니다. 이 대나무 집은 나중에 광화사廣化寺라는 사찰로 건립되기도 하였다지요.
 
 사실 「법구경」과 조과선사의 대답에 나오는 이 구절은 칠 불 통계게七佛通戒愒라고 하여, 과거세에 출현하신 일곱 분의 부처님께서 공통적으로 말씀하신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그 한문 원문과 해석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악막작 諸惡莫作  모든 악은 짓지 말고,
  중선봉행 衆善奉行  온갖 선은 받들어 행하며,
  자정기의 自淨其意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
  시제불교 是諸佛敎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여기서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라는 말씀은 생천도生天道, 즉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길을 알려주는 가르침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업으로 인해 여섯 가지 세상을 돌고 돕니다. 선업을 많이 지으면 천상이나 인간계에 태어납니다. 하지만 악업을 많이 짓게 되면 괴로운 지옥이나 배고픈 아귀세계, 또는 지혜가 없는 축생들의 세계에 태어납니다.
  악을 지으면 악의 허물이 마음에 남습니다. 하지만 선을 지어도 선의 종자가 마음에 남습니다. 선과 악은 상재적인 특성을 지닌 분별지의 경계이기 때문에, 악을 행하면 악의 과보인 괴로움이 오고, 선을 행하면 선의 과보인 즐거움이 오게 됩니다. 그런데 악을 행한 결과인 괴로움도, 지옥이나 아귀, 축생세계에서 그 과보를 모두 받고 나면 사라지듯이, 선을 행한 결과인 즐거움도 인간이나 천상세계에서 그 복을 모두 받고 나면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다시 또 자신이 지은 선업이나 악업의 결과에 따라 여섯 세계를 돌고 돌며 윤회를 거듭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칠 불 통계게의 세 번째 구절에서는 '자정기의', 즉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말이 나옵니다.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 것은 선업도 비우고 악업도 비워서 그 어떤 허물이나 번뇌도 남기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바로 해탈도解脫道, 즉 완전히 육도윤회의 괴로움을 벗어나는 가르침입니다. 실로 불교에서 추구한 진정한 선善이란 바로 해탈과 열반을 말합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부처님 당시에는 주로 출가한 수행자들에게 설해지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출가와 재가의 수행자 모두를 보살菩薩이라 부르며 상구보리上求菩提와 하화중생下化衆生의 실천을 강조하는 대승불교에 오게 되면 재가자들에게도 해탈도의 가르침이 설해지게 됩니다.
 
  우리가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수라, 천상이라는 여섯 세계를 윤회하는 이유는 마음속에 선행이나 악행의 결과인 업종자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착한 행동을 한 사람은 즐거운 과보를 받게 되고,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은 괴로운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이지요. 부처님께서는 세상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을 위하여 착한 행동을 더욱 하도록 장려하고, 나쁜 행동은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하는 윤리적 가르침을 먼저 일러주셨습니다. 세속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살아가는 이상, 당시 출가한 수행자들처럼 완전히 세속을 벗어난 수행은 하기 어렵다는 점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천상세계에 태어나기 위해 행하는 대표적인 선행으로서 보시와 지계의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보시란 부처님이나 청정한 수행자들, 그리고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많이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지계란 재가자들에게 부여된 계율인 삼귀의계三歸依戒와 재가오계在家五戒를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삼귀의계란, 부처님과 부처님이  남기신 가르침과 그 가르침을 따르는 청정한 수행자들의 무리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재가오계란, 산 것을 함부로 죽이지 않고, 남이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으며, 내 배우자 이외의 사람과 간음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향 香

  재가오계 중에서 앞의 네 가지는 그 행위의 성품 자체가 죄가 되기에, 이를 금한다는 뜻에서 '성계性戒'라 부릅니다. 그런데 '술을 마시지 말라'는 마지막 계율은 그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술을 마시는 행위 자체는 사실 물이나 음료수를 마시는 것처럼 죄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술을 마심으로써 정신이 혼미해져서 다른 수많은 죄악을 짓게 될 가능성이 높아지기에 이를 막기 위한 계라는 뜻에서 '차계遮戒'라 부릅니다.
 
  '모든 악은 짓지 말고, 온갖 선은 받들어 행하라'는 제악막작諸惡莫作과 중선봉행衆善奉行의 가르침과는 달리, '자신의 마음을 깨끗이 하라'는 자정기의自淨基意의 가르침은 출세간의 해탈도로서 세간의 생천도와는 그 성격이 다릅니다. 「법구경」에는 아래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만나지 못해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일반적인 세간의 가르침에서는 사랑은 좋은 것이니 해야 하는 것이고, 미움은 좋지 않은 것이니 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출세간의 해탈도는 설사 그것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번뇌의 허물을 남긴다면 비워버려야 할 것이 됩니다. 물론 이미 마음을 청정히 하여 반야의 근본지혜를 얻은 법신보살이 중생의 제도하기 위해 무소주심無所住心, 즉 집착이 없는 마음으로 행하는 자비행이나 방편행의 경우에는 허물이 되지 않습니다. '무위심내기비심無爲心內起悲心'이라 하여 허공과 같이 톡 트인 마음에서 진정한 자비심이기 때문이지요.
 
 
월간통도 202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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