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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보살은 깨달음이 법계에 두루하여 가득 찬 보살이다. 보각보살장에서는 무명을 돌이켜 지혜에 나아가는 올바른 수행과 선지식을 의지해서 네 가지 병과 미세한 미혹을 제거하기를 권하며, 앞에서는 아상이 있기에 이러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여기서는 장애가 제거되었기에 수습토록 한 내용이다.

수습함에 있어 시비가 있을 수 있을까 싶어 반드시 스승 곧 선지식을 의지해 네 가지 병에 빠지는 것을 면하게 한다. 그래서 보살이 대비로써 말세엔 성인과 현인이 숨고 정법이 장차 침몰하는 것이 안타까워 미래에 이익되도록 미리 이러한 질문을 하여, 지혜의 안목을 갖출 수 있도록 경책하고 있다. 이어 훌륭한 스승을 섬기도록 지시하며, 네 가지 병을 분별하여 제거토록 하며, 스승 섬기는 마음을 설명하고 병을 제거하는 관행을 밝혔으며, 발심이 매우 깊음을 드러낸다.

마음이 상에 머물지 않는다는 것은 범부의 번뇌 경계를 여윈 것으로 조금이라도 마음에 깨달았다는 경계가 남아 있으며 상에 머문 것이다. 보리 열반도 취하지 말아야 하는데 어떻게 세간의 꿈같고 허깨비 같은 경계에 머문다 하는가. 그래서 『금강경』에 "머문 바 없이 마음을 내라." 이른다. 그것이 바로 원각에 계합한 경계다.

진로라는 것은, 진은 육진을 말하고 로는 수고롭고 고달픈 것인데, 이는 육진으로 인해 수고롭고 고달픔이 이루어지는 것으로서 곧 번뇌를 의미한다. "말세의 중생이 부처님과 서로 떨어져 점점 멀어짐에 현인과 성인은 숨어 버리고 삿된 법이 불꽃처럼 일어난다." 한 것은 거성시요, 곧 부처님과 서로 떨어진 것이 멀다는 의미로서 부처님은 입적하셨어도 진리는 항상 하기에 단지 부처님과 떨어져 있을 뿐 진리와 면면히 이어진다는 뜻이다.

선지식을 어떻게 받들어 섬기며 법을 받듦에 있어 『대승사법경』에 "모든 비구들은 수명이 다하도록 결정코 선지식을 버리지 말라."라고 당부한다. 선지식은 출가자뿐 아니라 재가자로서 훌륭한 선지식도 잘 섬겨야 하며, 선지식에 대해 신뢰와 교만한 마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법구경』에 "만일 선지식의 모든 행위에 있어 터럭만큼이라도 의심을 내지 말아야 한다."라고 이른 것은, 선지식에 대해 의심이 있으면 심오한 법문을 수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살은 화현으로 방편의 도를 보이기에 헤아리기 어려우니, 다만 법문에 의지하고 자취에는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의법불의인, 곧 법에 의지하고 사람에 의지하지 말라는 의미다.

선지식을 의지하면 마음이 밝아져 시방세계를 비춘다 했는데, 이는 깨달음의 마음이 밝아짐으로 해서 지혜의 빛이 비추어 접촉하는 경계마다 물들임이 없어 심화, 곧 마음의 꽃이 빛난다 하리라.

마음의 병이 끝없지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는데, 요약하면 교법으로써 기준을 삼지 않고 스승을 지도자로 삼지 않으며 단지 마음으로 생각하여 생긴 병을 이른다.

스승을 어떠한 마음으로 섬기며 수행하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화엄경』 입법계품에서 "어떤 것이 보살행인가?"라는 선재동자의 물음에 문수보살은 "선우를 가까이하는 일뿐"이라 답한다. 『법구경』에서는 선지식을 부모·사다리·보배 옷·교량·해와 달 등 21가지로 비유하는데, 이는 한결같이 선지식은 무량 공덕을 갖춘 것에 비유한다. 그래서 선지식을 가까이하라 이른다.

역순경계라는 것은, 멀리 여의는 것이 역경계요, 친근함이 순경계며, 뜻이나 생각을 거스르는 것이 역경계요, 뜻이나 생각을 따른 것이 순경계다. 『승만경』에 "모든 것을 수용해서 제도할 것은 제도하고, 끊어 조보 시킬 것은 조복해야만이 불법이 오래 머문다."라고 이른다. 호법신장인 사천왕의 역할이기도 하다.

종자, 곧 모든 현상이 일어나게 하는 원인으로 인해 도에 들어감에 미세한 병이 있고 또한 뚜렷이 밝은 깨달음에 계합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때문에 법을 듣고도 이리저리 헤아리게 되어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하게 되며, 허망함을 미워하고 참된 것을 좋아해서 능소를 잊지 못하기 대문에 이러한 병을 제거해야만 한다. 더불어 현행, 곧 종자로부터 벌어진 현상은 거친 번뇌로서 쉽게 할 수 있지만 종자는 미세해서 밝히기 어려운 것이다.

원수의 집과 부모가 둘이 없다는 것은, 비추어 살펴보면 열반과 생사가 다르지 않다는 의미이다. 다르지 않기에 나와 남을 미워하고 사랑함도 없게 되며, 이렇게 구분하는 병이 있게 된 것은 참된 것을 사랑하고 망령된 것을 미워하기 대문이며, 나와 남을 구분하여 훌륭한 스승을 섬기지 않고 스스로 생각을 일으켜 행동함으로 인해 생기는 병이다. 앞에서는 사람을 관찰해서 잘못된 병을 제거하고 여기서는 법, 곧 경계를 잘 관찰하여 병을 제거하라 이른다.

수행에는 발심이 우선이고, 발심과 원력으로 정각을 이룬다. 원력이 없이 수행하면 성불하지 못하는 것은 마치 수레바퀴 하나가 빠진 것과 같으며, 새에게 오직 날개 하나만이 있는 것과 같다. 원대한 원력을 일으켜야만 보리를 성취할 수 있고, 이러한 원력을 받들어 교화한 것은 삼계의 모든 부처님이 이와 같은 원력으로 중생을 제도한 것이다. 제도하되 '나다, 남이다'하는 등의 상이 있으며 보살의 모습이 아닌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원각의 성품은 억지로 지어서 얻는 것이 아니며, 생각을 맡기고 놓아 버리는 것으로는 원각의 성품에 다다를 수 없고, 망령됨을 그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깨달음의 작용이라 할 수 없으며, 고요함에 머무는 것으로도 원각에 계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무명을 돌이켜 지혜에 나아가는 올바른 수행과 선지식을 의지해 네 가지 병과 미세한 미혹을 제거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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