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대웅전은 보통 석가모니부처님의 불상을 보시고 있는 가장 큰 법당을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통도사 대웅전에는 불상이 없다. 대신 대웅전 내부의 큰 창을 통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사리탑을 향해 예경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불상은 부처님을 상징하는 일종의 상징물이다. 그러나 부처님의 정골사리가 모셔져 있다면, 상징물인 불상은 필요가 없다. 또한 통도사는 창건 당시부터 사리탑을 참배하는 용도로 사리전을 조성했고, 이 사리전이 훗날의 대웅전이 된다. 따라서 사리를 참배하는 장소로서는 대웅전이 존재하는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자 제자들은 부처님을 떠올릴 수 있는 상징물에 대한 생각한다. 이전까지는 부처님께서 살아 계셨기 때문에 직접 뵙거나 법문을 들으면 됐으므로 상징물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열반하신 이후에는 잔존 유해인 영골사리에 부목한다. 오늘날에는 사리를 생각할 때 오색영롱한 구슬 같은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당신에는 화장한 이후에  남은 육신의 잔해 전체를 사리라고 칭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자 당시의 화장법에 의해 법구를 다비했고 이때의 영골을 수습하여 근본 8탑을 건립한다. 사리가 모셔진 탑은 곧 부처님을 상징하므로 매우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졌고, 훗날 사리를 봉안한 불탑이 성행하게 되었다. 사리를 봉안한 불탑은 불교가 동아시아로 전래되면서 그 영향력과 상징성을 그대로 이어 간다. 신라에서도 사리는 막강한 상징성을 지닌 성물로 인식되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리는 549년 중국의 육조시대, 남조의 양나라에서 진흥왕에게 보내온 사리"라고 전한다. 자장 스님이 사리를 모셔 오기 이전에도 다수의 사리가 전래되어 국내로 유입됐음을 알 수 있다. 사리의 수는 유한하지만 부처님을 상징하는 최고의 상징물로써 불법의 전파와 함께 부처님의 사리가 전해진 것이다.

대웅전 내부 불단

  한국 불교의 역사에서 자장 스님만큼 사리신앙의 핵심을 이루는 인물은 없다. 현대 5대 보궁으로 전해지는 통도사 · 오대산중대 · 정암사 ·법흥사 · 봉정암이 모두 자장 스님이 중국 오대산에서 모셔 온 사리에 입각한 보궁임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 이와 같은 상황을 잘 나타내 준다. 이외에도 적멸보궁을 표방하는 강원도 고성 건봉사와 속리산 법주사 역시 통도사의 사리가 임진왜란 때 왜구에 의해 손괴되는 것을 우려해 이운되는 과정에서 남긴 사리들에 의한 사찰이니, 이들 보궁 역시 근원을 따지면 모두 자장 스님과 통도사로 소급된다. 이 외에 북한의 묘향산 보현사도 불사리로 유명한데, 이 사리 역시 사명대사에 의해 이운된 통도사의 사리가 서산대사에게 보관되는 과정에서 일부가 남게 된 것으로 역시 통도사로 귀속될 수 있다. 즉 현존하는 적멸보궁과 관련해서는 자장 스님과 통도사의 영향이 압도적이다.

 

  사리의 영험에 대해 가장 특기할 만한 것은 1378년 음력 8~9월 고려의 수도 개경에서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통도사석가여래사리지기通度寺釋迦如來舍利之記」이다.

 

  고려 말 왜구의 침략 과정에서 통도사의 사리가 탈취될 위험에 처하게 되자 주지 월송 스님이 사리를 수도인 개경으로 이운한다. 이때 월송 스님이 모신 사리는 정골사리 1과 · 사리  4과와 여기에 비라금점가사 1령이 더 있었다. 월송 스님이 먼저 찾은 곳은 문하평리門下評理 이득분의 집이었는데, 이때 병환 중이던 이득분은 사리를 친견하고 병이 씻은 듯 낫게 된다. 이후 사리는 개경 송림사에 봉안되는데, 이 소식을 듣고 달려온 귀족들이 구름같이 운집해서 사리가 분신하기를 기원한다. 그 결과 이득분 3과 · 영창군 왕유 3과 · 시중 윤항 15과 · 회성군의 부인 조씨 30과 · 천마산의 승려들 3과 · 성거산의 승려들 4과 · 황회성 1과 등 59과의 분신사리가 나타나는 이적이 발생한다. 이 소식을 들은 우왕禑王의 명으로 1379년 음력 5월에 이색이 그 전말을 글로 남기게 된다. 이는 고려 말 사리 이적으로 최대의 사건이었다. 아래는 목은 이색이 쓴  「통도사석가여래사리지기通度寺釋迦如來舍利之記」의 전문이다.

 

     홍무洪武 12년(1379) 기미년 가을 8월 24일, 남산종 통도사 주지, 원통무애변지대사 사문 신 월송이 그 절에서 대대로 소장해 오던, 자장율사가 중국에 들어가서 구해 온 석가여래 정수리뼈 1매, 사리 4과, 비라금점가사 1벌 보리수 잎에 쓴 불경 약간을 받들고 서울로 가서 문화평리 이득분을 찾아뵙고 말하였다.

 

     "저는 을묘년(1375)부터 임금의 은혜를 입어 이 절의 주지를 맡고 있었습니다. 정사년(1377) 4월에 왜적이 쳐들어왔는데 그 목적은 사리를 얻으려는 것이었습니다. 땅에 구덩이를 깊이 파고 숨겼으나 그래도 적들이 파서 가져가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등에 지고 도망했습니다. 올해 윤5월 5일에 왜적이 또 쳐들어왔기에 또 등에 지고 절 뒤의 산등성이로 올라가서 개암나부로 가려진 덤불 사이에 숨었습니다. 적이 '주지는 어디 있는? 사리는 어디 있는가?라고 하며 절의 하인을 잡아다 볼기를 치며 다급하게 추궁하였습니다. 마침 하늘이 깜깜해지면서 비도 그치지 않고 내려서 쫓아오는 자가 없기에 양산을 넘어 언양에 이르렀습니다. 다음 날 절의 하인이 내 말을 가지고 왔기에 만나서 서로 붙잡고 울었습니다. 그러나 절로 돌아가려고 해도 적이 아직 물러가지 않았고 마침 주지도 새로 오기로 되어 있어서 봉안할 만한 곳이 없어서 그대로 받들고 이곳으로 왔습니다. 

 

  그때 이공은 몸이 좀 좋지 않아서 손님을 사절하고 있다가 사리가 왔다는 말을 듣자 벌떡 일어나 "사리가 우리 집에 왔단 말인가."라면서 기쁘고 반가운 나머지 아프던 몸이 다 회복되었다. 그리고 대궐에 들어가 임금께 아뢰려고 하는데 장씨의 난이 일어나는 바람에 한 달 동안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가, 찬성사 목인길 사의 홍영통이 임금 앞에 아뢰었다. 태후와 근비가 다 지극한 공경으로 예를 올렸고, 태후는 은그릇과 보주를 내리는 한편 내시인 참관 박을생에게 명하여 송림사에 사리를 봉안하도록 하였으니, 그것은 이 절을 이공이 중수하여 낙성 법회를 열었기 때문이었다.

 

  나라 안의 단월들이 귀천과 지우를 막론하고 파도처럼 몰려와 사리에 기도하고 나누어 가졌으니, 이공은 3매를 가졌고 영창군 유는 3매를 가졌고 윤시중은 15매를 가졌으며 회성군 황상의 부인 조씨는 30여 매를 가졌고 천마산의 여러 납자들은 3매를 가졌으며 성거산 여러 납자들은 4매를 갖고 황회성의 부보가 1매를 가졌다. 이때 월송은 마침 밖에 나가 있었기에 단원들이 몰려와 사리를 구걸하고 떠난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다음해 6월 19일 이공이 신 이색을 찾아와서 말하였다. "과거 강남의 감옥에 있었을 때 모진 고초를 당하면서, 살아서 돌아가고자 하는 바람으로 우리나라의 명산을 친히 예배하고 다녔는데, 그때 통도사도 실로 나의 눈에 들어 있었습니다. 돌아오고 나서 현릉께서 특별히 향을 내리셔서 제가 직접 각처를 찾아다니며 예를 행하였습니다. 통도사에 이르러 사리를 구해서 6매를 얻었으니 내가 사리에 인연이 없다고 한다면 얻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리가 통도사에 있게 된 것은 신라 선덕대왕때부터인데, 우리 고려국에 들어와서도 오백 년이 되어 가는 지금까지 사리가 송경에 이른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주상 전하께서 새로 이엄하신 초기, 신하들의 관직이 정비된 이때에 월송 스님이 사리를 받들고 이르렀으니, 이 일은 분명 우연이 아닙니다. 제가 임금께 아뢰었더니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예문 신하 이색에게 글을 쓰게 하여라'라고 하셨기에 제가 이렇게 왔습니다." 그래서 신 이색은 월송 스님에게 그 일을 확인하고 나서 이공의 말에 따라 글을 쓰고 그 제목을  <통도사석가여래사리지기通度寺釋迦如來舍利之記>라고 하였다.

 

  사리는 불교에서 최고의 신성한 성물이다. 이 때문에 사리가 모셔진 보궁에는 새가 앉지 못하고, 그 위를 날아서 가로지르지 못하는 등 다양한 이적이 발생하게 된다. 사리에서 성스럽게 강력한 에너지가 하늘로 솟구쳐 올라 동물들도 감히 범접하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대웅전 금강계단에는 <불탑게>라 하여 주련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게송이 적혀 있다.

 

 

쿠시나가르에서 열반에 든 것이 몇 해인던가.

문수보살이 성보를 모시고서 때를 기다렸다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이제 여기 있으니,

널리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예배함을 쉬지 않게 하는구나.

 

 

 

 

 

 

 

 

"한 권으로 읽는 통도사"  중에서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