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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아함경》과 《장아함경》에 <선생경善生經>이라는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는 <육방예경>에는 선생 善生이라는 사람이 매일 일어나서 동남서북과 상하의 여섯 방위에 절을 올리는 내용이 나온다. 부처님이 이 광경을 보고 까닭을 묻자, 선생은 '조상으로부터 전해진 전통'이라고 답한다. 그러자 부처님은 그 내용을 가르쳐 주겠다고 하면서 각각의 방위마다 의미를 부여해 가족과 사회 및 종교인을 대하는 존중의 윤리에 대해 설명해 준다.

 

  선생이 아침마다 여섯 방향에 절을 한 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온 방위 숭배의 잔재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를 본 부처님 은 그것의 헛됨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북돋아 주면서 '재해석'을 통해 승화시켜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부처님도 당시 소의 '육사외도'라고 불리던 다양한 사물들과 날카로운 토론을 벌이기도 했고 비판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지적'과 '조화'를 통해 교단을 넓혀 간 예도 경전 곳곳에 등장한다. 특히 불교는 전파되는 과정에서 선주 문화와 충돌하지 않고 융합 ·발전해 가며 침략이나 분쟁 없이 안착하는 특징을 보이는 종교이기도 하다.

치성여래와 북두칠성(조선시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라

  불교는 이렇게 사찰 안으로 전통 신앙을 수용했다. 그러나 제아무리 관용의 종교라 하더라도 자신들과 다른 신앙을 '전면'에 내세울 수는 없다. 존중은 하지만 수직적으로 받들어 줄 수는 없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교 안으로 받아들여져 버젓한 각閣이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일반인들이 쉽게 볼 수 없는 곳에 배치해 놓는다.

 

  대다수의 사찰이 산에 위치하다 보니 산신을 모신 산신각은 불교적인 것이 아님에도 비중이 크다. 때문에 절에서 산신각 찾기가 그리 어려운 건 아니다. 하지만 부엌에만 모셔져 있는 조왕신, 즉 부뚜막신은 사찰의 부엌에 가지 않으면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또 집을 호위하는 신과 같은 역할의 가람신을 모신 가람각은 통도사 같은 일부 사찰 외에는 없으며 통도사 역시 입구의 한쪽에 치우쳐져 있어 아는 사람 외에는 찾기가 어렵다. 성황신을 모신 성황각도 마찬가지다. 월정사의 성황각은 지금은 변경된 일주문 안쪽에 위치해 있지만 원래 일주문이 있던 자리를 기준으로 보면 일주문 밖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알고 가지 않으면 그 앞을 지나가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다. 

 

  이렇게 본다면 '불교도 완전히 관대하지는 않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는 가람 배치의 '원칙'과도 관련이 있다. 애초 설정된 가람 배치에 이런 전각들은 어디에도 속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림으로는 이들을 모두 대웅전에 모셔 주는 관용을 보인다. 대웅전의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보통 신중단이 위치한다. 신중단이란 신의 무리를 모신 단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원래 이곳에 모셔지는 인도 신격은 39위였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오면 104위로 늘어난다. 65위나 늘어난 것이다. 이 65위의 신이 바로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숭배되던 신들이다. 불교가 이들을 냉대한 것만은 아닌 것이 분명해진다.

  

특별히 두 번 모셔지는 '산신'

  전통적인 숭배 대상들 중 산신의 위치는 상당히 강력하다. 산신각은 보통 가로 한 칸 세로 한 칸의 약 한 평쯤 되는 넓이로 대웅전 뒤의 한적한 곳에 위치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삼성각 안에도 산신이 있다는 것이다. 한 사찰에 두 번씩 등장하는 것은 교조인 석가모니불 외에는 없다. 산신은 엄청난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다.

 

  산신이 인기가 좋은 것은 산악숭배의 영향도 있지만 현재 남아 있는 사찰의 대다수가 조선이라는 숭유억불기를 거치면서 산사로 남기 때문이다. 스님들 역시 또 다른 측면에서의 산신 지지자인 것이다.

 

  삼성각에는 일반적인 북극성을 불교적으로 표현한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독성과 산신이 모셔진다. 치성광여래를 그린 <치성광여래도>에는 북극성만이 아니라 북두칠성과 일월 그리고 남극노인성과  청룡·주작 ·백호 ·현무의 사신 28수 등이 모셔진다. 즉 그 자체가 고대 별 숭배의 종합판인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삼성각은 전통적인 숭배 대상을 모시고 있음에도 산신각이나 성황각처럼 외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전각의 영역에 버젓이 들어간다는 점이다. 실제로 삼성각은 산신각이나 가람각처럼 작은 전각이 아니라 제법 규모가 큰 번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이는 하늘을 찌를 듯한 이들의 인기를 불교가 좌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 삼성각에는 독성(나반존자)이라 해서 신선 숭배와 같은 측면도 존재하는데 이 역시 불교의 빈두루 존자로 연결되면서 불교적인 위상을 확보한다. 이렇게 되자 삼성각은 불교 밖에서 유래한 신앙임에도 불구하고 불교 안에서도 자유로운 위치를 갖게 된다. 이로 인해 삼성각은 대다수의 큰 사찰에는 모두 존재하며 그것은 당당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민중의 지지를 잃어버리지 않은 신은 상황이 변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다. 이는 종교의 운명에 대해서 우리의 관점을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자현스님 「사찰의 비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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