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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혹 장시간 쉬지 않고 인터넷 게임을 하다가 죽은 사람에 대한 뉴스가 나오곤 한다. 게임에 빠져 잠도 자지 않았다는 것이다. 알다시피 수면욕은 식욕과 더불어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욕구 중 하나이다. 그런데 이런 욕구를 꺾어 버릴 수 있는 게임의 힘은 뭘까? 그것은 바로 잘 짜인 '세계관'이다. 게임을 하는 사람에게 게임 공간은 이 세계와는 다른 거대한 하나의 세계가 된다.

 

  세계관이란 세계를 보는 관점이다. 과학의 발달이나 교육 때문에 현대인들은 '거의' 동일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옛사람들은 그들의 눈높이와 이해 방식에 따라 제각각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 · 로마 신화나 북유럽 신화 또는 중국과 인도의 신화들이 바로 이와 같은 세계관 속의 이야기이다.

불교의 우주론 수미산

불교의 우주론宇宙論

  세계관 가운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포함한 우주는 언제, 누구의 의해, 무슨 이유로, 어떻게 생겨났으며, 무엇에 의해 움직여 나가는지에 대한 생각을 통틀어 우주론이라고 한다. 유력한 종고들은 대부분 그 자체의 우주론을 가지고 있다. 불교의 우주론은 수미산이라는 사상의 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를 흔히 '수미산 우주론'이라고 한다.

 

  그리스 · 로마 신화가 우주의 중심인 올림포스 산을 배경으로 하는 제우스  정범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면, 불교는 수미산을 중심으로 제석천을 정점으로 하는 신들의 세계를 갖추고 있다. 두 세계관과 신화의 구조에서는 상당히 유사한 점이 발견된다. 언어군을 분류할 때도 역시 인도유럽어족을 하나로 묶는다.

 

  여하튼 모든 우주론에서 중요한 것은 우주의 중앙 즉 신체의 '배꼽'과 같은 존재이다. 여기에 존재하는 것은 우주산이라는 신령한 산이고 이곳이 중요한 이유는 제우스나 제석천과 같이 최고신이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불교 역시 이 같은 관점을 차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이 존재하시는 곳으로 수미산의 산정을 상정하게 된다. 이는 종교적인 예배 대상에 대한 신성과 존숭을 상징한다.

 

일주문, 첫 번째 문

  사찰은 전체적으로 수미산의 구조를 모사하는 방식으로 지어진다. 이것을 제일  잘 드러낸 것이 소위 삼문三門이다. 보통 '일주문→천왕문 →해탈문'의 순서로 이어진다. 올림포스 산은 신들이 거처하는 성역이다. 그러므로 그곳은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성스러운 공간이 된다. 불교의 수미산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수미산의 입구에 해당하는 장소에 앞으로의 공간이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는 상징문이 세워지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일주문이다.

 

  일주문이란 한 줄로 나란히 서 있는 기둥의 문이라는 의미다. 왕릉이나 충신 · 효자 · 열녀의 사당 앞에 건립되어 있는 홍살문을 생각하면 되겠다. 홍살문의 연원 자체가 인도의 불교 탑문, 즉 토리나이다. 일주문은 거기에서부터 수미산이 시작된다는 의미이다. 일주문 너머는 부처님의 영역인 성스러운 공간인 셈이다.

 

천왕문, 두 번째 문

  일주문이라는 수미산 영역부터 성역의 상징성이 부여되지만 더 높이 올라갈수록 신성함이 강해진다. 수미산은 우주의 중심 산이기 때문에 수미산 중턱에 네 방위신이 머물며 그 밖의 허공에는 해와 달이 위치한다고 고대인들은 생각했다. 이러한 네 방위신의 처소를 사왕천이라고 하는데 이곳의 동서남북에 각각 동방 지국천왕과 남방 증장천왕 그리고 서방 광목천왕 북방 다문천왕이 살고 있다.

 

  수미산 중턱의 사왕천을 상징하는 것이 사찰에서는 천왕문이다. 그러나 인도의 원형적인 건축 구조는 동아시아의 중국문화권으로 전파되면서 남북을 축으로 하는 일직선 형태로 변형된다. 그로 인해 남쪽에 위치한 천왕문에 사천왕이 모두 함께 옹기종기 모여 있는 형태로 변모하게 된다.

 

  불교 우주론에서 동방 지국천왕이 관장하는 곳은 승신주다. 승신주는 몸이 수승하다는 의미다. 요즘 표현으로 하면 이쪽 지역은 몸짱과 얼짱이 사는 곳이라고 하겠다. 남방 증장천왕이 관장하는 섬부주贍部洲로 이곳이 우리들이 사는 세계다. 흔히 사찰에서 축원을 할 때 '사바세계娑婆世界 차사천하此四天下 남섬부주南贍部洲 해동대한민국海東大韓民國' 운운하는 것은 바로 이를 말하는 것이다. 서방 광목천왕의 관찰 지역은 우화주牛貨洲이다. 소를 화폐로 하는 유목분화가 번성한 곳이라는 의미다. 끝으로 북방 다문천왕이 관장하는 세계는 구로주俱盧洲인데 이곳은 선진국보다 더 살기 좋은 복지세상이라고 한다.

 

  사천왕은 수미산 중턱에 살면서 4방위를 관장하며 악으로부터 이 세계를 지켜 낸다. 사찰 입구의 서천왕 역시 같은 의미다. 부처님의 성역을 모든 악과 삿된 견해로부터 지켜 내는 상징이다.

 

해탈문, 세 번째 문

  해탈문은 수미산 정상에 입구를 나타낸다. 경복궁으로 치면 근정문인 셈이고 그 너머가 사찰에서는 근정전에 해당하는 대웅전이 된다. 그런데 해탈문은 일주일이나 천왕문과는 달리 찾기가 어렵다. 숨은 문, 즉 비밀의 문인 것이다. 해탈문은 대우전 등 주요한 전각으로 진입을 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비밀의 문'처럼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주요 전각을 좀 더 장엄하게 바라보게 하기 위한 '누하진입樓下進入' 혹은 '우각진입隅角進入'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사찰에 들어가는 방법, 누하진입과 우각진입

 우선 누각 아래의 좁은 공간을 통과하는 누하진입에 대해 알아보자. 산사는 지형적인 특성상 경사각이 발생한다. 그런데 대웅전이 위치한 곳은 평평하게 터를 바른 네모난 공간이다. 그렇다 보니 전면의 입구와 높이 차이가 발생한다. 그래서 대웅전 앞에 축대를 다져 만세루와 같은 누각을 만들고 그 사이에 좁은 계단식 통로를 만들게 된다.

 

  누하진입은 누각 아래라는 좁고 어두운 폐쇄형 공간 구조를 통과하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서 참배객은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마련인데 이는 부처님께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라는 사찰 건축의 숨은 의도이다. 또 어두운 누각 아래에서 보면 대웅전의 밝은 영역이 광명의 신성함으로 다가오게 된다. 어둠 속에서 보는 밝은 빛, 이것이 바로 중생의 어둠을 떨쳐 내는 부처님의 환한 미소인 것이다.

 

  두 번째는 우각진입이다.

  대문을 열어 놓았는데 집안이 훤히 보인다면 이건 좀 가벼워 보이며 운치가 없다. 그래서 현대의 아파트에서도 현관문을 열었을 때 곧바로 거실이 보이지 않도록 꺾이는 설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꺾는 설계에는 툭 느인 당당한 기상이 없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대문 안쪽에 시선 차단용 가림벽을 설치하곤 한다. 이는 담 같은 용도와는 다른 것으로 여름에 치는 발과 같은 기능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누각의 측면을 돌아 들어가게 되는데 이것을 우각진입이라고 한다. 이는 어른의 중앙 전면을 피하는 동아시아 문화와는 연관되는데, 측면으로 접근하면 대웅전의 날렵한 처마 곡선을 볼 수 있어 참배객은 자신도 모르게 한국적인 선의 미학에 흠뻑 취하게 된다.

 

 

 

 

 

 

자현스님 "사찰의 비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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