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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보살은 미래 세상에 부처가 되어 중생을 제도한다는 미래불이다. 미륵보살장은 금강장보살장에 이어 윤회의 근본과 중생교화의 방편을 묻고 그에 대한 답을 서술한 내용이다.


금강장보살은 윤회에 머문 마음으로 여래의 원각 경계를 알 수 없음을 밝히고, 미륵보살은 중생에게 결정된 믿음을 내도록 하기 위해 네 가지 물음을 일으킨다. 윤회의 근본이 무엇이며, 윤회에 몇 가지 성질이 있으며, 수행문에 몇 가지 차별이 있으며,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을 묻고 있다. 앞의 두 가지 물음, 윤회의 근본과 윤회의 성질이 곧 끊어야 할 윤회에 관한 물음이라면, 뒤의 두 가지 물음인 수행문과 중생을 제도하는 방편은 곧 윤회를 끊는 지혜와 행원을 묻고 있다.


경에 "지혜의 눈 혜안은 실상 그대로의 실상이니, 미륵보살의 물음은 모두 실상 그대로의 지혜로 실상을 비추어 모든 중생이 환상과 허위에서 벗어나 불지견 곧 부처님의 참다운 지혜에 돌아가게 한다."라고 이른다. 삿되고 바른 것을 분별한다는 것은, 파사현정 곧 잘못된 견해에 사로잡힌 것을 타파하고 옳은 진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삿된 도와 삿된 견해, 삿된 집착을 깨뜨리는 것이 그대로 중도실상의 진리를 나타내는 것으로서, 파사 곧 삿된 것을 타파하는 것을 벗어나서 따로 현정 곧 옳은 진리가 있다는 것이 아니겠다. 그렇게 되면 도리어 옳은 진리가 있다는 것에 집착하게 되어 다른 이의 삿된 견해를 깨뜨리는 동시에 자기가 도리어 삿된 견해에 떨어지는 것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서, 결국에는 진정한 파사현정이 될 수 없다.


결정신 곧 결정된 믿음이라는 것은 영원히 다른 것을 믿지 아니하는 마음인데,「수능엄경」에 "미묘한 믿음이 상주해서 일체 망상이 남김없이 다 소멸했다."라고 이른다. 질문은 청정한 지혜와 청정한 마음으로 마음의 근원을 비추어 무상지견 불지견 곧 부처님의 참다운 지혜를 성취할 수 있기를 간청하는 내용이다. 무생인이라는 것은, 참다운 성품은 생 하는 일이 없어 본래 청정하거늘 중생이 깨닫지 못해 망령된 마음으로 생을 보니 생한 즉 반드시 멸함이라고, 고로 윤회라 한다. 여기서 실상을 깨달아 마음을 요달해서 참되고 거짓됨이 생하는 일이 없으니, 마음이 이미 생하지 않아 윤회가 영원히 끊어져 이를 인가했기에 무생인이라 한다. 이는 법이 이미 무생함에 곧 멸이 없는 도리이다.


「화엄경」에 "소법도 생멸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함이라, 무슨 까닭인가? 만약 생이 없으면 곧 멸도 없기 때문이라."라고 이르고 또한 "일체법이 생이 없으며 일체법이 멸이 없으니, 만약 능히 이와 같이 알면 제불이 항상 앞에 나툰다."라고 이른다. 이에 연기는 성품이 없기에 불생이요, 자성이 없이 연기하기에 불멸이다.


망념이 고요한 것은 마치 허공과 같거니, 무엇이 생하며 무엇이 멸하리오. 마음은 부생임을 보게 되며 마음은 무멸임을 보아 적연히 경계에 기거하니 무슨 생멸이 있다 하겠는가.


윤회를 끊어야 한다고 했는데, 윤회는 "무시로부터 애착이 근본이요, 이에 욕망이 보조 인이 되어 애착이 생하고 생명이 인이 되어 욕망이 있게 됨이요, 이에 욕진 곧 색성향미촉의 다섯 대상이 결속되어 생사가 상속되며 내지 여러 상황을 일으켜 선악 등 업을 지어 괴로움과 즐거움 등 과보를 받는다."라고 이른다. 『열반경』에 "애착으로 인해 근심이 생기고, 근심으로 인해 두려움이 생기나니, 만약 탐욕과 애착을 여의면 무엇을 근심하고 두려워하겠는가."라고 이르고,『불명경』에 "애욕이 있은즉 생하고 애욕이 다한즉 멸한다."라고 이른다.


탐욕은 곧 오욕으로 '색성향미촉'으로 말미암아 애착심을 일으켜 중생들로 하여금 생사가 끊어지지 않게 한다. 곧 세계의 실상을 바로 보지 못하는 미혹이 나와 남을 가르고 몸을 집착하는 애착으로 드러나고, 애착으로 인해 탐욕에 갇힌 왜곡된 생활 곧 업이 반복되며, 탐욕에 갇힌 왜곡된 생활이 삶의 질곡과 뒤틀림 곧 괴로움을 낳게 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미혹과 생사에 갇힌 업과 괴로움이 서로서로 의지해 중생의 윤회를 반복하게 하지만, 윤회가 본래 윤회가 아니므로 중생의 실상은 늘 청정하다 하리라.


『조론』에 "중생이 오래도록 유전하는 까닭은 모두 욕망에 탐착한 까닭이요, 만약 탐욕을 마음에서 그친즉 다시는 생사가 없을진대, 잠재한 신령한 정신이 그윽이 침묵해서 허공으로 더불어 부처님의 덕과 화합하게 되나니, 이를 열반이라 하느니라."라고 이른다.


경계가 애착을 등진다는 것은, 경계를 애착함으로 말미암아 경계가 마음을 따르지 않고, 곧 뇌고로운 번뇌로 미워하고 싫어함을 일으키나니, 성냄으로 인해 살해, 괴로움, 구타, 능욕인 갖가지 악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갖가지 업을 지어 지옥, 아귀에 태어난다는 것은 나쁜 업을 지어 삼악도의 과보를 받는 것이며, 애염업도 곧 업을 싫어하고 법문을 좋아한다는 것은, 악도를 두려워하고 악이 되는 인을 짓지 않으며 악을 여의는 법문에 깊이 애락을 일으키는 것이다.

탐욕과 갈애가 근본이 되기 때문에 윤회라 하고, 마음의 본체를 요달하지 못했기에 성인의 도가 아니라 한다. 갈애는 곧 애욕에 목마르듯 간절함을 이른다.


삼악도의 고통스러운 과보가 모두 음욕 때문에 존재한다 하니, 경계가 제 기분에 들면 '사랑이 더욱 심해지고', 경계가 제 기분을 거스르면 '미워하고 질투하여' 성내거나 때리며 더욱 심한 행위를 한다. 역경계를 만나면 많은 악행을 짓게 되므로 다시 삼악도의 극심한 고통을 초래하게 되어, 이는 모두 쏠리는 사랑 때문이다.


보살이 짐짓 탐욕을 부리는 것처럼 생사 속에 들어간다는 것은, 보살이 자비한 마음으로 중생들을 위해 동사섭, 곧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 주면서 교화하는 일이다. 『유마경』에 "중생의 병이 곧 보살의 병이며, 또한 중생의 병은 반연으로부터 일어나며, 보살은 대비로부터 일으킨다."라고 하였으며, 천태대사의 『마하지관』에서는 "보살은 범부나 이승이 나고 죽음에 빠지거나 끊는 것과 같지 않으며, 열반에 대해서 탐착 하지 않는다. 나고 죽는 법에 물들지 않는 것이, 마치 연꽃이 진흙 속에 있는 것과 같고 의사가 병을 치료하는 것과 같으며 새가 허공을 날되 허공에 머물지 않는 것과 같이 동사섭으로 중생을 제도한다."라고 하였다.

미움과 애착을 제거하며 부지런히 여래의 원각 경계를 구하는 것은, 마치 광석에서 나온 쇠로 능히 그릇을 만드는 것과 같다 하리라.


두 가지 장애 곧 이장과 사장인데, 유식의 궁극 목표가 바로 이 두 장애를 지혜로 전환하여 보리와 해탈을 증득하는 것이다. 이장은 이치 도리 곧 근원적 도리나 이치에 어두워 지혜를 장애 하는 것으로서 법집으로 인해 장애 된 곳이며 이에 식에 전환해서 지혜를 증득하면 바로 보리를 증득하는 것이다. 사장은 온갖 현상에서 벌어지는 일 곧 번뇌의 장애로서, 이는 아집으로 인해 장애가 되어 생사윤회를 하는데, 이 또한 전식득지 곧 식을 전환해서 지혜를 증득하면 바로 해탈이 된다.
결국 이장은 지혜를 장애 하는 소지장이 소멸됨으로 해서 보리를 증득하고, 사장은 윤회의 삶을 계속하게 하는 번뇌장이 소멸됨으로 해서 해탈을 증득하는 것이다. 이장의 이는 소지 곧 소지리라는 이치에 대한 장애로서, 근본무명에 대해 사장에 대한 장애로서, 근본무명에 대해 사장 각각에 대한 번뇌가 작용하는데, 이는 청정한 마음을 물들며 계속해서 상생하여 모든 업을 일으키며 생사를 연속하게 한다.


또한 이장 곧 근본무명이 법계 진심을 덮어서 불각망념이 일어나 제법성상을 통달하지 못하고 정지견을 장애 하여 무명을 물들게 되며, 번뇌 곧 사장은 진여 근본의 지혜를 장애 하여 생사를 거듭하게 된다.


사장을 없앤다는 것은 생사의 고통을 알고 반연을 쉬는 것이요, 장애는 이장과 사장이 있고 집착에는 아집과 법집이며 번뇌는 현행 곧 밖으로 드러나고 습기 곧 안으로 갈무리되는 것으로 구분되며, 생사는 분단생사 곧 중생의 생사와 변역생사 곧 보살의 생사와 구분이 된다.


보살의 경계에 머물지 못한다는 것은 이승 곧 성문 연각들이 아직 보살의 경계에 들지 못하는 것으로서,『법화경』에 "비록 장자의 집에 이르렀으나 오히려 문 밖에 머물러 있어, 초암에서 숙식하고 감히 집에서 살지 못하는 격"이겠다.
야부 선사는 게송에 이른다.

올바른 사람이 삿된 법을 말하게 되면
삿된 법이 모두 바른 법에 돌아가고
삿된 사람이 바른 법을 말하게 되면
바른 법이 모두 다 삿되어지리니
강북 탱자 강남에서는 귤이 되지만
봄이 오면 한 가지 꽃 모두 피우네.

닦아 가는 과정에서는 온갖 차별이 있지만 원각에 이르러서는 하나 곧 일심이 되겠다.

미륵보살이 석존 입멸 56억 7천만 년을 지나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데, 여기서 56억 7천만 년은 곧 5식, 6식, 7식과 나아가 8식이 전환되어 지혜를 얻으면 곧 깨달음을 성취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촉목도존 곧 눈에 와닿는 모두가 도 아닌 것이 없다 했으니, 원각의 품속에서는 일상 모두가 청정한 법전이며 미묘한 장엄의 경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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