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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256호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한지는 닥나무를 베고, 찌고 삶고, 말리고, 다시 삶고, 섞고, 뜨고, 건조하는 등 매우 복잡한 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이 과정으로 10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최고의 종이로 태어난다. 아흔아홉 번의 손질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백지百紙라고도 불렀다. 이렇게 복잡한 공정으로 완성된 종이에, 목판 활자를 찍어 내어 인쇄물로 제작한다고 하면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한 것이다. 이러한 제지 기술은 불경 보급의 바람을 타고 급속도로 성장하게 되는데, 현존하는 오래된 한지 인쇄물이 대부분 경전이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그중 제일이 751년 석가탑에 봉안된 세계 최초의 목판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또한 당대에 발간된「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대방광불화엄경」등 여러 경전들이 유물로 남아 있다. 이는 천 년을 견디는 한지의 우수성을 보여준다. 또한 우리나라가 보유한 16건의 세계기록유산 중 13건이 한지로 제작돼 있을 만큼 뛰어난 기술은 역사를 기록 보존하는 최고의 장치라 할 수 있다.

  한지의 기본 재료는 닥나무다. 닥나무 껍질로 만든 한지는 바람이 잘 통하면서도 습기를 빨아들이는 성질이 있어 수명이 길다는 특징이 있다. 산지 승원의 특성상 사찰 주변에는 닥나무가 자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맑은 계곡물은 물을 필요로 하는 제지 공정상 최적의 조건이었다. 여러 사찰에서 자연스럽게 한지 제작이 이뤄졌다.

  경전 보급을 위해 스님들이 목판을 판각하고 한지에 인경하는 작업은 순차적으로 이뤄졌다. 통도사는 많은 양의 종이를 제작하는 제지소 역할을 했다. 운흥사처럼 한 곳에서 다 이뤄지는 경우도 있었고 목판과 종이를 분담하여 제작하기도 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은 판각된 이후 여러 곳에 인출되고, 인경 작업을 거쳐 전국 여러 사찰에 인경본들이 보급되었다. 또한 한지는 불상에도 쓰였다.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며 잦은 전란으로 이동이 용이한 지불紙佛을 조성했는데, 이를 통해 지호공예의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사찰의 스님들을 주축으로 한지 제작과 불경 보급은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이르러 숭유억불정책이 국가적으로 시행되고, 동시에 왕실과 귀족, 민가를 중심으로 종이 수요가 급격히 늘어났다. 이에 종이 부역은 사실상 사찰에 전가되었다. 불경을 만들던 수준 높은 제지 기술이 강제 노동으로 치환되면서, 많은 사찰이 종이 제작에 한계를 느끼며 폐사 위기에 이르기까지 했다.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종이 제작을 주도했으나, 조선시대 이후에는 여러 사찰이 종이 부역으로 폐사되기 이르고 점차 사찰에서의 종이 생산은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통도사는 1838년(헌종 4)에 이르러서야 덕암당 혜경스님의 원력으로 종이 부역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한지의 우수한 보존력

  중국의 선지는 2009년, 일본의 화지는 2014년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되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화선지라는 말도 중국의 선지에서 유래된 말이다. 우리나라의 제지 기술은 삼국시대 중국으로부터 들어왔지만, 기술을 발전시켜 고려시대에는 중국 내에서 고려지高麗紙라고 불리며 가장 고급스러운 종이로 인정받았다. 원조의 기술을 뛰어넘은 것이다. 이 기술은 610년 고구려에서 담징이 제묵법과 제지법을 일본에 전하면서 일본에도 전수되었는데 이것이 선지의 시작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이 서로 제지법을 전수하고 전수받은 관계에서 기술을 발전시켰지만 꽃을 피운 것은 결국 한국이었다. 하지만 근대화를 거치며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이후 한지는 급격히 쇠퇴하며 자취를 감추었다. 그 사이 중국과 일본은 본국의 종이를 유네스코 유산에 등재시키며 우수성을 자랑하고 있다.

  한국의 종이 인쇄 역사를 명확히 들여다볼 수 있는 주제는 바로 '불교'다. 불교에서는 불상이나 탑을 조성할 때 내부 복장伏藏에 여러 물건을 넣게 되는데, 이를 복장유물이라 한다. 그때 가장 중요한 것이 경전이다. 석가탑 복장에서 발굴된 「무구정광대다라니」가 대표적이다. 그뿐만 아니라 오래된 불상의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유물들은 당시의 역사를 증명하고 연구하는데 중요한 사료가 되는데, 한지의 보존력이 우수한다 보니 경전이나 기록물이 매우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오래된 책들이 대부분 경전인 점도 이러한 불교 의식에서 기인한다. 조선 후기의 문신 신위가 "종이는 천 년을 가고 비단은 오백 년을 간다"는 말을 남긴 것도 한지의 보존력을 두고 한 말이다. 수량의 측면이나 보존의 질이나 모두 불경이 압도적이다.

  한지의 우수성을 증명하기에 불교전적만큼 우수한 증거자료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한지의 유네스코 등재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불교 유산이 한지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배경이 되기 때문이다.

제1회 한지의 날을 맞아 휘호를 쓰시는 종정예하

  지난 2020년 한지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끊어진 사찰의 한지 제작 역사 복원을 예고하는 일이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께서 길이 100m의 초대형 한지를 조성한 것이다. 초대형 불화제작을 목표로 한 공정이었지만, 이를 통해 과거 사찰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제지 역사를 재현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었다. 특히 통도사는 과거에도 대찰로서 많은 양의 한지 생산이 이뤄졌는데, 서운암 인근에 1천여 그루의 닥나무를 심은 것도 이러한 상징성을 부여한 것이다.

  또한 2022년에는 '한지의 날'을 최초로 선포하며 한지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알리는 데 힘을 모았다. 한지의 날은 매년 10월 10일로, '10x10=100'이라는 의미를 담아 백지白紙라는 뜻이다. 이날 종정예하께서는 대형 한지에 '한지의 날' 휘호를 새기며 한지 세계화에 강한 힘을 실었다.

  근대화의 과정에서 한지는 갑작스레 자취를 감추었다. 공장에서 대량생산이 가능한 화학제지에 밀려 과거 찬란했던 한지의 역사, 한지 장인, 기술, 한지 재료에 대한 연구 등 모든 것이 사라진 역사만큼 지체되었다. 이제 한지는 새로운 도약을 시도한다. 각계 전문가와 가장 많은 한지 유산을 보유한 불교계의 힘이 한데 모여 문화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종이문화의 근간을 회복하고, 한국 제지 기술의 우수성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월간통도 202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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