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사리뿟따 존자여/ 저는 더 이상 견디기가 힘듭니다./ 예리한 고통은 점점 심해지고 가라앉질 않습니다./ 마치 힘센 사람이 시퍼런 칼로 머리를 쪼개듯/ 거센 바람이 제 머리를 내리치고/ 고통은 더 강해지고 차도가 없으며/ 마치 힘센 장사가 튼튼한 가죽 끈으로 제 머리를 조이는 것처럼 극심하고 예리한 두통이 가라앉질 않습니다."

 

  죽음의 문턱에 와 있는 아나타삔디까 장자. 아나타삔디까는 어렵고 힘든 이들을 도와주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한역하면 급고독 給孤獨이다.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극심한 고통을 호소한다. 그리고 더 이상은 몸을 운신하지 못할 것을 직감하고, 사람을 시켜 대신 세존에게 마지막 문안을 전한다. 그리고 사리뿟따 존자에게 부디 와 달라고 마지막 만남을 청하게 된다.

 

  "장자여, 어떻게 견딜 만합니까?"라고 묻는 사리뿟다 존자에게 "마치 능숙한 백정이 예리한 도살용 칼로 배를 도려내듯이/ 그같이 거센 바람이 제 배를 도려내는 듯합니다./ 또 마치 힘센 두 사람이 양팔을 붙잡고 숯불 구덩이 위에서 굽고 태우듯이/ 그같이 제 몸에 맹렬한 불길이 치솟는 듯합니다./ 사리뿟따 존자여, 저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고통은 더 심하기만 하고/ 사라지지 않는다고만 알아질 뿐입니다."

 

  아나타삔디까 장자는 기원정사를 건립한 핵심 인물이다. 세존께서 그의 말년에 교화의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준 이로, 무주상無住相보시를 대표하는 인물로 유명하다. 사리뿟따 존자는 기원정사의 장소 물색부터 기초 계획 및 운영까지, 그 모든 시간을 함께한 장자의 오랜 친구이자 귀중한 조언자이다.

 

죽음이란?

사대四大가 흩어지는 과정

 

  불교에서는 '죽는다'라는 표현을 '사대가 흩어진다'라고 표현한다. 사대란 지(地:땅의 요소) · 수(水: 물의 요소) · 화(火: 불의 요소) · 풍(風: 바람의 요소)의 네 가지 성품을 말한다. 우리의 몸은 사대가 만나[연기緣起] 결속되어 운영되다가 [緣生] 그것이 다시 뿔뿔이 흩어지는 [緣滅] 과정을 거친다. 사대가 뭉쳤다가 흩어지고 다시 뭉쳤다가 흩어지고 하는 것을 생生이라 하고 또 윤회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이 '마음'이다. 이 마음을 '업식' 또는 '업장'이라고 한다. 천도재 때 천도의 대상은 우리의 몸이 아니라 이 마음이다. 천도의 대상으로서의 마음 덩어리를 '영가' 또는 '영혼'이라고도 한다.

 

  사대가 흩어질 때(즉, 죽을 때)는 위의 인용에서처럼, "거센 바람이 머리를 쪼개고 배를 도려내듯, 불길이 몸을 태우고 솟구치는 듯" 지수화풍이 제각각 요동친다. 격렬하게 움직이거나 아예 움직이지 않거나 심한 격차를 보이며, 사대의 결속과 조화가 깨어지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먼저 바람의 요소[풍대風大]인 호흡이 빠져나간다. 우리가 사는 속세에서는 호흡만 끊어지면 일단 의학적인 죽음 상태로 판명한다. 그러나 아직 남은 요소들이 있다. 연달아서 불의 요소[火大]인 온기가 빠져나가 몸이 차가워진다. 물의 요소[水大]인 수분도 빠져나가 몸이 축 처지고 마른다. 마지막 땅의 요소[地大]인 뼈·머리칼·이·손톱 등이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부패되어 사라진다. 이렇게 몸을 구성하던 사대가 흩어져버리면, 우리가 몸이라고 굳건히 믿고 있던 덩어리가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없어지지 않는 것이 있다. 죽어도 죽지 않는 것!  우리의 '마음 또는 업식, 업장'이다.

 

호흡 관찰

윤회를 끊는 여정의 첫걸음!

 

  석가모니 붓다는 일찍이 윤회의 실체가 이 '업장'이라는 것을 통찰하셨다. 그래서 업장을 없애면, 몸이 붙을 수 있는 기반이 없어지기에 윤회를 끊을 수 있다는 원리를 관찰하셨다. 그래서 '윤회 끊는 법', 즉 '업장 공략 법'을 세상을 내놓으셨는데, 그것은 '업장의 실체'를 통찰하는 것이다. 몸의 실체인 사대를 통찰해 보면 몸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듯이, 업장의 구성 요소를 통찰하면 업장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몸이라고 평생 착각한 것은 그저 사대의 이합집산이고, 그 속에 불변의 실체는 없다. 지수화풍 사대의 작용과 변화를 보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이다. 가장 보기 쉬운 것이 '풍대(바람)의 움직임'이기에 '호흡'을 먼저 본다. 자신의  '호흡을 보는 것'은  기나긴 윤회를 끊는 대장정의 첫걸음인 것이다.

 

  「영가전에」라는 영가천도문에는 "사대육신四大六身 흩어지고 업식業識만을 가져가니"라는 유명한 문구가 나온다.  좀 더 인용하면 "탐욕심을 버리시고/ 미움 또한 거두시며/ 사견마저 버리시어/ 청정해진 마음으로/ 부처님 품에 안겨/ 극락왕생하옵소서./ 돌고 도는 생사윤회/ 자기 업을 따르오니/ 오고 감을 슬퍼말고/ 환희로써 발심하여/ 무명업장 밝히 사면/ 무거운 짐 모두 벗고/ 삼악도를 뛰어넘어 / 극락세계 가오리다."라고 하여 몸 받고자 하는 집착(탐욕심)을 버리고. 내가 있다는 착각(사견)마저 버리면, 마음이 무명에서 벗어나 청정해져서 깨달음의 세계(극락)로 갈 수 있다는 내용이다. 그럼 어떻게 버리느냐? 어떻게 무명업장을 밝힐 수 있는가? 그 방법을 붓다께서 공개해 놓으셨다. 사마타[定]와 위빠사나[慧) 수행의 병행이다. 이것은 정혜상수定慧雙修 또는 지관겸수止觀兼修라고 한다.

 

죽는 순간

'수행한 만큼' 두려움은 없다

 

  그러면, 죽음의 순간에 직면한 아나타삔다까 장자에게로 돌아와 보자. 장자에게는 큰 두려움이 엄습한다. "죽어서 다음생이 어찌 될지 무섭다."라고 토로한다. 마구 무너지는 몸이 고통과 다음 생生에의 두려움, 고통과 두려움, 이 두 가지가 그를 압도한다. 그러자 사리뿟따는 "그대는 삿된 의견이 없고, 삿된 계행이 없고, 삿된 말과 행위, 삿된 생계와 정진이 없었기에 걱정하지 말라."라고 한다. "그대는 부처님·담마·상가·바른 계행에 대한 아주 정확한 청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라며, 그 믿음에 대한 상기와 관찰로 두려움을 가라앉힌다. 즉, 그대는 정법에 따라 매우 잘 살았기에 악처에 떨어질 염려가 없고 이미 선처가 예약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붓다의 말씀대로 진솔하게 수행한 만큼, 죽을 때의 두려움은 그것에 비례하여 없어지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다음 생은, 이미 인과의 철칙으로 결정되어 있다. 전생의 결과로써 지금의 현생이 있듯이, 현생의 결과로써 내생이 있다. 그래서 원인과 결과는 불이不二, 둘이 아니다. 내가 살아온 방식과 살아생전 지은 업은 어디 가지 않고 업장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기 때문이다. 먼저 내생에의 두려움을 먼저 가라않혀준 사리뿟따 존자는 이제 '죽음의 고통'을 타파하기 위해 설법을 시작한다. 존자는 임종의 고통 속 장자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을까? 죽음의 문턱에서 괴로워하는 신도, 도반, 그리고 나에게 아비담적 해법은 있는 것일까? 다음에 그 요지를 소개 합니다.

 

월간 통도

2023.04

Vol. 497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