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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학의 발달과 함께 1960년대부터 심장이 멎고 호흡이 중지된 지 얼마 안 된 사람을 살려내는 심폐소생술이 점점 더 발전하여 인공호흡으로 공기를 기도에 불어넣고 두 손으로 흉부를 반복해서 압박하는 현재의 형태로 정립이 되었다. 이 시술을 통해 소수의 사람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게 되었는데 이들 중 대략 10~25% 정도가 심장이 멎어 있던 동안의 경험인 근사체험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물질 위주의 과학이 발달하면서 개발된 심폐소생술로 인해 주류 과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정신세계의 체험이 알려지게 된 것은 아이러니라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사례로 우리나라에서 의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으로 건너가 마취과 의사로 근무하면서 경험한 것이다. 그 의사는 유대인이 세운 큰 병원에서 주로 심장 수술의 마취를 담당하였는데 수술을 집도하는 외과 의사는 실력은 뛰어나지만 평소 동양인을 비하하였다. 그래서 이 한국인 마취과 의사도 그에게 늘 무시를 당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바로 이 외과 의사의 심장이 멎는 응급사태가 발생하자 의료진이 달려들어 심폐소생술을 했는데 30분이 지나도 반응이 없자 포기하려고 했다. 그때 이 한국인 마취과 의사는 평소에 자신을 늘 무시하긴 했지만 수술 실력이 뛰어난 의사라 포기하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자신이 심폐소생술을 더 해 보겠다고 자청한다. 미국인 의료진이 멀뚱히 보고만 있는 가운데 한국인 의사는 비지땀을 흘리며 심폐소생술을 했고 30분쯤 지났을 대 기적적으로 심장이 뛰기 시작하여 살아났다고 한다.

 

  그런데 심장이 멎어 사망 판전을 받았던 이 외과 의사가 심폐소생술 도중 체외이탈을 하여 소생술 현장의 공중에 붕 떠서 자신의 육체가 소생술을 받고 있는 광경을 모두 지켜보았다는 것이다. 내려다보니까 자기 친구들인 미국인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거의 흉내만 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자신이 늘 무시하던 한국인 마취과 의사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온몸에 비지땀을 흘리며 심폐소생술을 하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회생한 후에는 한국인 마취과 의사가 자신을 살렸다고 감사하며 이후 그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달라졌다고 한다.

 

  이 사례는 의사가 직접 경험한 근사체험이어서 더욱 신뢰가 간다. 왜냐하면 의사들은 대학 때부터 유물론과 실증주의에 입각한 과학교육을 받아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러한 현상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체험은 단순한 환각이나 꿈,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런데 근사체험자들이 모두 똑같은 체험을 하는 것은 아니다. 모두 조금씩 다른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에 대해 근사체험의 회의론자들은 체험자의 개인적인 문화가 반영된다는 사실을 토대로 근사체험이 뇌가 만들어 낸 환영일 뿐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근사체험의 요소 중 '빛과의 만남'이 있다. 그런데 근사체험자들은 이를 자신의 종교적 배경에 따라 해석하게 되는 수가 많다. 개신교 신자가 성모 마리아를 만나는 일은 없고 불교 신자가 예수를 만나는 체험은 하지 않는다. 각자의 종교에서 중요한 인물을 조우하게 되는 것인데 종교가 없는 사람은 빛 그 자체로 보지  날개 달린 천사를 만나지는 않는다. 이처럼 체험은 내용이 다르더라도 중요한 것 빛 또는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봤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는 것이다.

 

  비유하면 깊은 산골에서만 살아온 세 사람에게 서울 구경을 잠깐 시켜 주고 자기가 본 걸 얘기하라고 하면 말하는 내용이 모두 다를 것이다. 누구는 남산타워를, 누구는 경복궁을, 또 다른 사람은 63 빌딩이나 롯데타워를 얘기할 것인데 이를 두고 "똑같이 서울을 보고 와서 하는 애기가 이렇게 다르니 이들이 같은 장소에 다녀왔다는 걸 믿을 수 없다."라고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자신이 본 것 중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부터 얘기하는 건 당연할 테니까.

 

  또한 신비가 영매 또는 최면 퇴행을 통해서 전해지는 '죽음, 그 후'에 의하면 우리 모두가 수명을 다해 육신을 벗아나면 근사체험의 여러 요소들을 모두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근사체험 때와는 달리 좀 더 영역이 확장되고 체험 내용이 깊어진다. 예를 들어 생의 회고만 하더라도 근사체험 때는 수십 년 살았던 이번 생만을 되돌아보게 되나 우리가 죽어서 하게 되는 생의 회고 때는 바로 직전의 생뿐만 아니라 전전생 그리고 그 이전의 수백 년 전의 삶까지도 회고하면서 여러 경험을 통합하게 되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것이 과연 사실인지는 각자 훗날 수명을 다해 육신을 벗어나는 시점에 직접 확인해 보시면 된다.

 

  근사체험만을 알고 있으며 근사체험이 진실인지 의심하는 단계에 오래 머물 수 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죽음, 그 후'까지 탐구의 범위를 확장시키면 근사체험의 진정성 여부를 더 잘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건물 1층의 맞은편에 담장이 있고 그 너머에 뭔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잘 모를 때 1층에만 머물러 있지 말고 이 건물의 4, 5층까지 올라가 보면 담장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확실히 드러나게 된다. 궁구의 범위를 확장시켜 봄으로써 불확실성을 극복할 수 있다.

 

 

 

월간 통도 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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