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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의 광배를 장식할 때 자주 보게 되는 문양은 넝쿨무늬다. 그 속에는 꽃과 봉오리가 묘사되는데, 이를 보상화문과 인동문, 당초문이라고 한다. 사찰에 꽃을 장엄할 때는 만개한 꽃을 그리거나 새길 때도 있지만, 아직 피지 않은 꽃망울을 그리거나 새길 때도 있다. 만개한 꽃을 표현할 때는 '완성'리라는 의미를, 봉우리를 나타낼 때는 '가능성'이나 '인욕'의 의미를 상징한다.

사찰의 꽃 장식

꽃으로 장엄된 궁전

  사찰에는 많은 꽃 장식이 있다. 대웅전을 둘러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꽃창이다. 꽃창살은 왕궁과 사찰에만 허용되던 최고 권위의 표현 중 하나이다. 대웅전을 지탱해 주는 기단의 화강암 판에도 꽃이 새겨져 있으며, 기단 위 바닥 전돌에 연꽃 등이 새겨지는 경우도 있다. 이밖에 대웅전 외각의 벽화에도 꽃이 등장하며, 기와의 막새에도 연꽃이 새겨져 있다. 무심히 지나치는 경우가 많지만 서까래의 목재 끝에는 매화점이라고 하는 꽃술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 모양의 흰 점이 일곱 개 찍혀 있는 경우도 있다.

 

  외부만이 아니다. 대웅전 내부로 들어가면, 천장에 학과 더불어 꽃이 꽃창처럼 활짝 피어 있다. 물론 차이는 있다. 꽃창에는 창살이 교차점에 꽃이 입체로 조각되어 있지만, 천장 꽃은 우물 정井 자 사이에 그려진 평면 그림이라는 것이다. 또 불단인 수미단에도 꽃 장식이 부조되어 있고, 단 위에도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꽃과 화병이 있다. 주변 벽을 보면 나무와 나무의 중간 포벽에 또한 여러 꽃나무나 화병 장식이 들어간다.

 

  그리고 대웅전 중앙의 불상에 보게 되면, 부처님은 활짝 핀 연꽃 광배와 그 주변의 화려한 넝쿨무늬를 배경으로 연꼬이 활짝 핀 연화좌대 위에 앉아 계신다. 그 뒤쪽의 불화에서도 불상에서와 같은 양상이 반복되어 나타나는데 불화속에는 연꽃을 든 보살까지 존재한다. 그렇다면 부처님이 계시는 전각은 전체가 '꽃의 궁전'인 셈이다.

 

  한국불교의 철학 체계에서 가장 폭넓은 영향을 미친 것은 화엄사상이다. 여기에서 화엄이란 '잡화엄식雜花嚴飾', 즉 모든 꽃으로 장엄된 세계라는 의미이다. 사찰은 그 자체로 이미 화엄세계라고 이를 만하다.

 

연꽃 아니면 모란

  사찰이라는 비밀의 화원에는 꽃이 많으니 종류도 많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막상 종류는 그리 다양하지 않다. 주류는 불교를 상징하는 연꽃과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의 양강 구조이다.

 

  연꽃은 불교의 이동경로를 따라 인도에서 이 땅에 전래됐다. 중국 성리학의 비조인 북송의 주돈이는 연꽃을 일러 화중군자라 했다. 군자로 부를 만한 품격 있는 꽃이라는 뜻이다. 연꽃은 사치스럽지 않은 자태와 진흙이라는 낮은 곳에 임하는 겸손의 덕, 그리고 강하지 않고 은은한 향을 통해서 중국인의 심성을 사로잡게 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사찰뿐 아니라 궁궐, 서원 등에서 가리지 않고 사랑받았다. 땅을 파거나 흐르는 물을 막아 물을 가두어 놓은 '못'을 '연못'으로 부르는 경우가 일반화됐을 정도이다. 연꽃을 알아보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전후좌우 동형의 꽃을 찾으면 된다. 특히 연꽃은 중앙에 독특한 연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게 눈에 띄면 연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모란은 제국 당나라의 미감을 대표하는 부귀와 풍요의 꽃이다. 오늘날 모란은 장미와 같이 뚜렷하고 강력한 꽃에 의해 주류에서 밀려나 있다. 그러나 중국사에서 아주 유명한 미녀, 당의 양귀비라는 점을 고려하면 모란이 왜 인기가 있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요즘은 살집이 있고 풍만한 체형이 인기가 없지만, 못 먹고 못 살던 과거에는 이런 체형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모습이었다. 이와 같은 인식 때문에 불상도 우리가 보기엔 비만인 것이다.

  

  모란을 일컫는 다른 말은 화중지왕이다. 모든 꽃이 그 앞에 머리를 조아린다 하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국색천향이라고도 했다. 나라의 최고 미녀요, 가장 빼어난 향기를 자랑한다는 뜻이다. 이런 연유로 모란은 사찰 안으로까지 들어왔다. 그래서 사찰에서 발견하는 꽃문양은 연꽃이 아니라면 십중팔구 모란임에 틀림없다.

 

  사찰의 장식에서 연꽃이 위에서 보는 정면으로 표현되는 데 비해, 모란은 주로 측면으로 새겨지거나 그려진다. 또한 연꽃은 정면으로 보는 구조상 여럿이 섞여서 묘사되지 못하고 단독으로 혹은 병렬되어 표현되는 경우가 많지만, 모란은 측면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군집을 이루는 모습으로 흔히 묘사된다. 물론 이러한 법칙은 대개가 그렇다는 것이지 예외가 없지 않다. 그러므로 연밥의 유무를 통해서 이 둘을 구별하는 게 더 확실하다.

 

  이외에 간혹 살펴지는 꽃으로는 국화가 있다. 이는 유교를 숭상했던 조선의 영향임이 분명하다. 국화는 매화 · 난초 ·대나무와 더불어 사군자로 불린다. 하지만 매화와 난초는 꽃을 묘사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사찰 장식에는 국화만 수용된다. 국화는 꽃잎이 굵은 바늘침 모양이므로 구별하는 것이 어렵지 않으며 꽃병에 꽂혀 묘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자현스님 「사찰의 비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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